황 일 용 발행인

아버지는 가정에서 “빨대” 역할만 할 뿐이다

세상은
어리석지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다만 어리석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해야할 “도덕적” 분별력이 으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든 사적이 아닌 공적 영역이 있다는 사실자체가 사회를 구성하게 하고 유지해주는 본질적인 요소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이유 중에 하나가 자기 관념이나 고집에 사로잡혀 힘들 경우가 있다. 흔히들 자기관념의 틀에 세상을 꿰어 맞추려드니 관념의 틀로 이해가 될 때에는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어리석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지, 세상은 어리석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세상은 우리 생각과 상관없이 그냥 돌아가게 돼 있다. 그래서 이세상은 함께 살아야 할 공동의 터전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고가 사회적으로 이유가 될 때는 우리 사회는 뭇매를 들어 질타하고 만인의 적으로 몰아가는 아주 못된 행동을 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물과 같이 얽혀 있어 하나의 그물코를 들어 올리면 모든 그물코가 따라 움직이듯이 원인과 결과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얼마 전 교육감께서 교권을 세우고 학생들이 선생을 구타하는 행위를 엄벌하기 위해 가해 학생을 형사고발한다고 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래 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에 대해 참된 이해와 사고로 위엄 있게 행동해야 비로소 안정된 사회적 틀 속에서 자녀들의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고 선생은 대접받고 학생은 학생다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방임하다 보면 그 학생들이 그렇게 해도 되나보다 생각한 나머지 생활화되다시피 되어가고 있는 세태가 교육의 현실이다.
흔히 말하는 “요즘 아이들은 애들같지 않아”라고 우리 청소년들의 비행만 탓 할 것이 아니라 기성사회가 청소년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잘못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고민과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의 저변에는 기성사회 속에 깃들어 있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하여 개인주의가 팽팽하여 공동체의 행동 양식이 무너져 가정이 비정상화 되고 아버지의 권위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아버지는 가정에서 “빨대” 역할만 하게 된 꼴이다.
이 모두가 “빨리 빨리”의 성공신화에 매몰되어 빠르게 변화는 생활체계에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탁악세(五濁惡世)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회는 지금 분쟁에 시달리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어 인간들은 서로 물고, 뜯고, 중상모략하면서 견물생심에 눈이 어두워 앞뒤 가리지 않고 남의 떡이 커보여 서로 뺏으려고 야단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은 “더러운 곳에 살아도 언제나 깨끗함을 잃지 않는 연꽃”을 가르킨 말이다.
연꽃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새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꽃밭의 더러움과는 달리 연꽃의 자태는 너무나 맑고 아름답다. 연꽃의 가치는 더러움을 이기고 깨끗함을 피워내는데 있다. 사람의 가치도 욕망과 집착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마음의 어둠을 닦아 눈부신 행복을 피워 내는데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평화롭게 살다 가느냐, 아니면 혼돈의 불안 속에서 살다가느냐는 모두가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그 시간 또한 그리 길지만은 않다. 아무리 욕심내 더 머물고자 해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천상병 시인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소풍」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임종 순간에 “아름다운 소풍을 끝마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연으로 이 세상에 와서 함께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에는 인연의 무게가 너무나 지중하다. 마음을 열고 서로 나눌 때 한 생명의 아름다움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고통과 즐거움을 온전히 감당하면서 마침내 겸허하고 맑은 얼굴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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