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라도 잡아 주세요

효(孝)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이번 추석명절인 것 같다. 부모님에게 좋은 비단옷이나 산해진미를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효”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고유명절인 추석을 맞아 부모님의 거친 손 한 번 잡아주고, 부모님 계신 곳이 춥지나 않으셨는지, 부모님 이부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셨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효도의 한 가지다.
어렸을 때 늦게 귀가해도 아랫목이나 이불속에 밥이 묻혀 있어 시절의 추억과 아무리 술에 취해 들어와도 속 버리지 말라고 밥상위에 해장국을 쓿여 내오시던 어머니, 가난했지만 가족 간의 정은 훨씬 부자였던 시절, 쉰 살이 넘긴 자식도 어머니에겐 한 갓 철없는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아내가 정성들여 식탁을 차린들 어머니가 차려온 조촐한 밥상에 비하랴. 어머니한테 길들여진 아들의 입맛은 아무리 솜씨 좋은 아내라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그 입맛도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그 입맛은 빼앗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추석 절에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는 것이 어떨지? 가족은 진솔한 대화와 끝없는 관심, 따뜻한 배려로 지킬 수밖에 없다. 거기서 쌓이는 가족애만이 소통 안 되는 바이러스를 물릴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핵가족시대를 맞아 부모에게 “효도”란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진지가 오래되었다. 요즘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망을 앞세워 물질은 갈수록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과연 그만큼 행복해지고 있나 묻고 싶어진다.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풍요가 함께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고 싶은것 다하고, 갖고 싶은것 다가져도 행복감은 일시적일 뿐이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는 매일같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자식의 잘못을 지적했다고 또한 아버지가 사랑의 매로 다스렸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결국 아버지가 경찰에 입건된 사건이 뉴스에 올라오고 있다. 또한 용돈이나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다고 부모를 구타하거나 살해 한 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 TV뉴스?신문에 나기도 한다.
부모의 사랑이 바다보다 깊고 넓어서 글로 혹은 말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님은 자식 사랑에 누구보다 더 애절하고 자식이 못살면 그것이 안타까워 애태우고 있다. 다만 자식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못살고 있다는 것을 부모의 탓이라고 원망한다. 이번 추석은 10일간의 긴긴 추석절이다. 해외에도 좋지만 부모님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보는 것이 어떨까?
예수께서도 “은혜를 모르고 효도를 모르는 사람은 독사에 비유한 바 있다.” “구렁이는 알에서 태어나지만 살모사 같은 독사는 태어나면서 어미를 죽이기 때문에 비유한 말”이다.
그만큼 부모에게 제일 덕목 중에 한 대목이란 것을 예수께서도 한 비유를 말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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