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사람으로 살아온 32년 - ⑤

1996년 가을 쯤 아내와 4살 된 큰딸 푸름이의 손을 잡고 가좌동 성당에 갔다. 당시 성당 사무장님은 지금 고인이 되신 김정환 아브라함 형님이셨다. 사무장님은 우리 가족에게 교리교육과정서부터 성당 입문에 대한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몇 주후 교리가 시작되어 우리 부부는 큰 딸 푸름이의 손을 잡고 교리교육도 함께 받았다. 푸름이를 따로 맡길 곳이 없었고 진행하시는 수녀님과 교리 선생님이신 김대영 디따고 보좌신부님의 배려로 세식구가 함께 교리실에서 교리교육을 6개월 동안 이수하고 1997년 4월 20일 드디어 세례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주례사제는 지금 서울대교구 홍보국장님으로 계시는 허영엽 마티아 신부님으로 당시 가좌동성당의 주임신부님이셨다. 지난 2017년 5년 국회 가톨릭의원모임(모시전 국회의원님이 가톨릭신자) 미사에 염수정 안드레야 주교님을 보좌하고 오셔서 “신부님께 세례받은 가좌동성당 윤희식 알렉산더입니다” 하고 인사드리고 명함을 드렸더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지금 허영엽 마티아 홍보국장 신부님과 페이스북 친구사이다.
혼자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교리를 받겠다고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내하시는 분이 없는 관계로 안 마오로 수녀님에게 많은 것을 부탁드렸다. 수녀님은 나의 대부님과 아내의 대모님을 추천해 주셨고 성당활동 단체 가입에 대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봉사단체인 레지오 입단을 권유하셨고 나는 수녀님께서 안내하신 데로 사도들의 모후 Pr. 라는 기도하고 봉사는 단체에 입단하게 되었다. 단장님은 강옥중 힐라리오 회장님이셨고 이 분은 성당 사목회의 총무 역할을 하시며 성당의 살림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셨다. 모든 어렵고 힘든 일, 복잡하고 누구도 나서지 않는 일들을 솔선수범하셔서 임무완수 하셨던 분이시다.
나와 아내의 세례대부, 대모님이 멀리 이사를 가셔서 마땅이 함께할 분들이 없어진 우리 가족에게 강옥중 힐라리오 단장님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고 나는 강 단장님 안내하시는 데로 성당 봉사조직에 참여하며 정말 열심히 따랐다. 그래서 우리는 영세대부, 대모가 가까이 안계신 관계로 강옥중 힐라리오 단장님을 양대부로 삼아 1년 전까지 20여년간 총무단이었던 네부부가 한달에 한번씩 꼭 해오고 있었는데 둘째 형님 역할을 하신 한동수 라파엘 형님이 사랑하는 형수와 두 딸을 두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그래서 둘째 형수의 요청에 따라 부부모임은 잠시 쉬고 있다. 남자들만 가끔씩 만나 식사하고 소주한잔씩 하곤 한다.
강옥중 단장님은 세례 받은 지 얼마되지 않은 나를 성당 사목회 총무단에 부총무 역할을 하게하고 신앙적으로도 많은 것을 안내해 주셨다. 나는 언제나 열심히 막내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성당 봉사활동은 시작되었고 이후 형님들이 많은 곳에서 함께하기를 요청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노인대학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견진 대부님이신 김세진 대건안드레야 회장님과 박미숙 미셀 누님 등 50여명 되는 운영위원들이 150여명이나 되는 어머니, 아버님들을 모시고 즐거운 일은 함께하고 어려운 일들은 나누며 친가족과 같은 나눔을 실천했던 것이다. 서로 간의 소통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했고 내 주위 분들은 소통을 매우 원활히 잘 했던 것 같다.
지금 20여년이 지났지만 그 때 노인대학 운영위원 집행부 12명은 두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다 그 이름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자 해서 일명 ‘작은 사랑회’이다.
그 ‘작은 사랑회’ 모임이 생기게 된 것은 정진석 당시 서울대교구장님의 작은 공동체 실천의 일환으로 소성당활성화를 추진하여 우리지역은 하나의 새로운 성당으로 분리하게 되었다. 가장 활성화되고 가좌동성당의 주역들이 많았던 구역이 신설된 성당으로 분리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어지기 아쉬워 만든 모임이 바로 ‘작은사랑회’이다.
이렇게 새로운 홍은3동성당 공동체로 이동을 명령받은 우리들은 새로운 성당에서 성당 신축과 전교활동에 전력하게 되었고 여기의 주축은 40대 남성들로 이루어진 ‘디디돌’ 모임이었다. 나는 레지오 활동과 디딤돌 모임의 회장까지 맡았고 열심히 공동체 안에서 기도하며 나눔을 실천하려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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