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이던

한 무더기가녀린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고개를 돌린 나는 보라색 들국화와 눈을 맞추는데 옆길 논밭에 들어간 아저씨가 함박웃음으로 손짓을 했다.
밭 가장자리에 있던 그 아저씨는 한웅큼의 깻잎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다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냥 돌아서는 내 팔을 잡아 세운 그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호미로 흙더미 속에 숨어 있는 고구마를 찾아내고 거칠고 고르지 못한 땅 밑에 숨어있던 못생긴 고구마를 일일이 줄기에서 뜯어내는 아저씨의 손길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뭣 보느라 넋이 나갔어요?”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아저씨가 내미는 광주리를 선듯 받아들지 못하고 아저씨가 내 두 팔에 고구마를 안겨주면서 그만 미안해서 종종 걸음으로 내달렸다.
문득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고 고구마를 캐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보다. 혼자만 똑똑하고 고고해서는 공동체 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촌 시대에는 팀워크,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협력하여 함께 공동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말에 현혹시키다보면 때론 거짓말이 탄로나 곤혹을 치루면서 공동체 조직을 파괴시키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을것”이다. 즉 사실을 알뿐이다. 사람들은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좋은 줄은 안다. 가능하면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고, 남에게도 그렇게 권하고 싶어하지 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사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가. 왜 혼자 살지 않고 모두가 함께 사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살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공동체”가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일정한 “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말로서 사람들을 현혹시켜 공동체 안에서 파괴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나에게 무언가 득을 주고 이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형성된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 조직에서 살다보면 언제나 “미꾸라지”가 한 두 마리는 있게 마련이다. 그 미꾸라지가 새롭게 구성된 조적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사죄하고, 조직에 성실하는 것과 조직차원에서 미꾸라지를 사퇴시키는 것, 이 두가지가 의회의 선결조건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구민이 뽑는 의원이니 어쩔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조직을 좀 먹어서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의도에서 사람에게 “누가”된다면 스스로 물러나야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퇴하라고 할 사람도 없겠지만 다만 조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공동체모임에서는 그에게 한결같이 냉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해”라는 비웃음이 새로 의회모임의 공동체 분위기가 일고 있다. 그는 실현가능성 없는 꿈을 알고 살아가는지 모름다.
이런 꿈을 “망상”이라고 한다. 꿈은 누가 보아도 실현가능해야 사람들이 그 꿈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인격을 갖춘자만이 공동체로서의 자격을 가질수 있다. 그렇기 않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돌리고 거짓으로 책임을 면하려하는 그 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불쌍하다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새로운 공동체모인에서 새 피를 수혈받아 이제까지 선배들이 이룩한 의회가 예전처럼잘되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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