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것은 “진실”

황 일 용 발행인

“사람은 신분으로 고귀하고 미천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 의해 존귀한과 미천함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진정한 기득권이나 특권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성숙에 기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시 오만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창문을 열자 새벽별 하나가 달빛에 젖어 흐른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별을 바라보다가 옷깃을 여미고 마당으로 발을 내딛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공기가 상큼했다.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도둑고양이가 마루 밑에서 두 눈을 번쩍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순간 나는 고양이를 반겼다가 금방 두 손을 내저었다. “야 여긴 먹을게 없어, 다른 곳으로 가!” 고양이는 내 목소리에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대문을 나가는데 괜히 둘째 딸이 떠올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멸치대가리라도 찾아줄걸,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금방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못한 것은 한달가량 둘째 딸이 임시로 있으면서 자기 가족이라고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질색을 하고 고양이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들은 어눌한 목소리로 혼자 지내기 너무 외롭다는 말을 라면서 등을 돌렸다.
경전에 “넘어진 그곳이 희망이 시작점이라는 말씀이 있어,” 사실 나야말로 50대에 남의 빚보증 서 주고, 사기당하고, 몇 년을 정신없이 은행과 경찰서로 쫓아 다니고도 빈털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햇덩이가 하늘을 열고 상큼한 바람이 마당을 쓸고 간다. 코를 흠흠 거리고 가을 냄새를 맡는다. 내가 밟은 지평마다 축복이고, 감사의 물결인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버려야 할 짐과 행해야 할 짐”만 잘 챙기면 될 것 같다.
작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디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작고 어리다하여 시덮찮게 여길게 아니라 되레 무겁게 여기고 두렵게 생각하고 무서워하면서 조심하고 신중히 대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대상은 새끼사자, 독사, 불, 그리고 비구라 했다. 새끼사자는 믓 짐승의 왕인 사자의 새끼니까, 독사는 어려도 맹독을 갖고 있어 한 번 물리면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불은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소홀해서는 안되고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비구는 어려운 인천(人天)의 스승인 부처님 제자이기에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라 한다.
무서워해야하고 두려워해야할 게 또 있다. 이른바 사지(四知)라는 말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이 사지라는 말이다.
은밀하고 부적절하고 거래를 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너만 입다물고 있으면 돼, 나랑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누가 알겠어?”라고들 한다. 이런 제의에 거절하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네가 알고 내가 아는 것만이 아니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알잖아”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영원히 감추어 질 것 같은 일도 결국은 드러나서 밝혀지기 마련이다.
요즘엔 30년 전의 일까지 들춰내어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작다고 어리다고 가벼이 여기고 하찮게 생각하고 저지른 일들이 무섭고 두렵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산다는 게 나날이 얼음장 밟듯 하는 생활이고 고추보다 맵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행동할 수도 없고 주견()없이 남 하는 그대로 덩달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산다고 해도 무서워하며 사는 거지 싶다.
가장 무섭고 두렵게 여길 것은 뭐니뭐니 해도 “진실”이란 말이다. 진실 앞에는 어느 누구라도 어길래야 어길 수 없기 때문이기에 그러하다.
진실을 가벼이 여긴다든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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