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은혜란 무엇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를 영장류로 분류하고,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득한 옛적 신화 속에 등장하던 상상과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심지어 그러한 상상을 넘어선 과학적 업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고 있다. 그 정체 모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생활방식이 개발되고 다양한 문화가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도, 그 불안의 포승줄은 더 옥죄어 온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탐욕의 역주행으로 인한 자연과 인간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잠재적인 불안이다. 서로가 없어서는 생존할 수 없는 이러한 관계를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나타내는 것이 은혜(恩惠)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소중히 하고 깨달아야 할 은혜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략 천지자연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사회의 은혜, 법률의 은혜, 즉 네 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천지자연의 은혜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 알고 있다. 자연이 한부분인 땅과 공기, 물이 없다면 인간 생존이 가능하겠는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필수 환경인 자연에 대해 지금 인간은 어떠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편익성과 쾌락성에 의해 자기에게 생명을 주고, 이어주는 자연을 대량 파괴하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 파멸적인 심판을 받으리라고 그렇게 유추하고 있다.
두 번째, 부모님의 은혜다. 부모님은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분이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분이다. 그렇게 은혜에 대해 보은하고 .나 자신부터 괴롭기 그지없는 반문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이 사는 곳, 거기가 아마 지옥일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의 은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한 통찰력을 가졌다. 인간은 사회를 통해 지금 사회는 물질주의 금전 만능주의에 빠져 익사직전에 살고 있다. 돈은 이미 신의 권좌를 물려 받을 차기 황태자다. 그 사회의 은혜는 돈 앞에 벌벌 떠는 퇴출위기에 있고, 우리 모두 는 더 이상 사회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의 음악을 버린 것 같다.
네 번째는 법률의 은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법률에 의해서 보호받고 그 정당성과 행위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법률의 은혜도 인간의 당위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큰 필요 충분 조건이다. 요즘에도 과연 공평한 법률이 있을까. “내로남불”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 법률의 겅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힐난과 비웃음이 나라에 만연하다. 이런 나라에서 법률의 은혜가 느껴질까. 우리가 진정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실현하고 이룩하기 위해서는 위의 네가지 은혜를 알고 실천 할 때 가능해 진다.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 바탕에는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않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은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이익만 향유하려고 하는 이른바 “공짜의식”이다.
이러면 “내 돈은 내 돈이고, 네 돈도 내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강도, 사기, 분노나 뇌물과 횡령 같은 말들은 정말 사전에서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전문가의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세대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 져야 내가 이기는 것이 법칙이며 공식이라면 좋으련만 약속하거나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연령대가 다양한 것이 신기했다. 서로 격려하고 응력하는 지지자들이 있어서면 하는 바램이다.
다만 전통은 따르되 그것에 매이지 알고 창조적 열정과 변화에 대한 실천을 멈추지 망아야 한다.
잘난척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것이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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