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 있으니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산들이 오밀조밀하게 연이어 있는데다 발길 닿는 대로 골짜기마다 전해오는 설화들이 아름아름 담겨있다. 여기에 사계절이 뚜렷하여 자연이 산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런 산에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굽어보기엔 이 산만큼 좋은 곳이 없다.
하지만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산은 인간들의 이기와 탐욕, 모든 시비와 차별이 끊어지고 사라진 곳이다. 그 자연을 가까이 하기엔 산만큼 좋은 곳이 없다. 지난 시절 괜한 생각도 하고, 괜한 사람도 만나고 괜한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이제는 괜한 이런 산중에서 자연이 주는 지복도 좀 누려가며 나를 풀어놓고 살아야겠다. 산중에서 숲속에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주는 자연 앞에서 나를 돌아볼 때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내면 깊숙이 반추하여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언제까지 산과 자연이 아닌 분별로 시비에 휘말려 이러고 또 저러고 살다 말이겠는가. 나도 이제나마 내가 태어난 산중태생의 본향을 알고 고향과 진배없이 닮은 산속을 다시 찾았고 지금은 산이 중청된 농촌에서 트랙터로 밭을 갈고 골을 만들어 잡초가 가라지 못하고 비닐도 밭골을 덮었다. 그 위로 일정하고 구멍을 내어 들깨나 울금, 그리고 산마를 싶었다.
열매가 많이 열게 적당히 순도 따주고 풀을 베어 밭둑을 정갈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쓸어 담아야 할 들깨는 둥근 채를 받쳐 한 번 더 길러 내니 꽤 튼실하게 여문 깨알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혀 끝에 닿는 맛이 마냥 즐거웠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서대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