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북한기차는 비핵화를 향해서 나아가야 말로하는 비핵화가 아닌 구체적 행동을 보일 때

김 수 철 
(전 서울시의원)
김정은의 북한기차는 비핵화를 향해서 나아가야
말로하는 비핵화가 아닌 구체적 행동을 보일 때

김정은의 기차는 5일 새벽 3시 평양에 도착했다. 수많은 당 간부와 주민들이 나와서 그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다음날 노동신문은 “열흘낮, 열흘밤! 우리 원수님께서 조국으로 돌아오시였다! 이 소식과 함께 조국강산은 삽시에 격동과 환희의 용암으로 화하였다”고 썼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한 신문을 보고 반가워 어쩔줄 몰라 하는 시민들의 사진을 대서특필 했다. 
그 기차가 중국을 관통하고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세계는 김정은이 어떤 표정으로 나타날까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26일 새벽 중국 남부의 한 역에서 하차한 뒤 정말 피곤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눈을 비비는 장면이 일본 언론에 포착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김정은의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들고 옆에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조선시대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베트남의 단둥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세계의 모든 언론이 김정은이 내리길 기다릴 때 갑자기 한 여성이 차문을 열고 나타난다. 김여정이었다. 아마도 사전에 점검을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그의 역할은 이해가 되었으나 그 모습이 웬지 어색했다. 김정은이 카메라 샤워를 받으며 나타났고, 그 뒤를 김영철, 리수용 등 북한의 핵심 외교안보라인이 뒤를 따랐는데, 통로로 내려오던 김여정이 김영철을 밀치듯이 하면서 추월하는 장면이 나온다. 
직급이나 나이가 한참 위인 김영철을 대하는 김여정의 모습도 이상했지만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김영철의 표정이 더 이상했다. 
그 모습에서 의사결정 중심에는 김정은-김여정 등 소위 백두혈통이 있고, 즉 왕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수직적 사회임을 알 수 있었다. 최소한의 매너도 없는 사회인 것이다.
북미 하노이 회담은 별 결과 없이 끝났다. 강대국 미국보다는 1950년대부터 핵을 숭상하다시피 해온 약소국 북한 입장에서는 그 상실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많은 측근들을 대동하고 왔고 그들 모두가 북미 합의 실패를 알기 때문에 김정은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태영호 공사의 언급처럼 김정은이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렇지만 그의 업보인 것이다. 
공식적인 일정만을 소화한 김정은 기차를 타고 다시 평양으로 가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올 때는 66시간 이상 걸렸다고 했는데 갈 때는 60시간으로 단축해 더 빨리 평양으로 갔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이 그것 같지만, 그 열차 운전사가 얼마나 열심히 달려갔을까 상상이 간다. 
김정은은 아마도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국의 발전상도 보고 평양의 발전상도 기대했을 것이다. 세상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출발하면서 이미 실무자들이 합의한 대로 폐기물이 된 영변 핵시설을 넘겨주고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인도적 지원을 받아오면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180도 달랐다.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 볼튼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영변에 더해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 생화학무기까지 내놓으면 제재를 해제해 주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 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상상도 못한 문제가 출제되자 당황한 모양이다.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만 실패는 실패다.
북한은 현재 자신들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북한이라는 기차는 진실의 터널을 지나 비핵화 목적지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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