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

10여 년 전 종로구 삼청동은 예스러운 멋이 남아있는, 얼핏 어릴 적 산동네 느낌이 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대문 안에서 문화와 관광의 중심은 인사동이었고, 그에 비해 삼청동은 다닥다닥 붙은 낡은 한옥들 틈에 뭔지 모를 위압감을 주는 구중궁궐 청와대가 자리한 곳이라 대낮에도 행인들의 왕래가 드문 한적한 동네였다.
청와대 뒷산 북악산도 개방이 되기 전이고 알려진 맛집이라고는 수제비집이나 묵국수집 정도여서 일반인들이 시간 내서 돌아다닐 만한 장소와 공간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참여정부 5년 내내 청와대에서 근무해서 삼청동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다. 점심시간에 허름한 음식점에서 동료들과 넥타이 풀고 둘러 앉아 알싸한 홍어탕과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피로를 풀던 때가 그립다.
현재의 삼청동은 어떤가? 요즘 말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경복궁 옆 기무사령부 터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섰고 기존의 낡은 한옥들은 죄다 성형되어 늘씬한 카페로 탈바꿈하였다.
삼청동 맛집 지도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뀔 정도이고, 주말이면 구경나온 차와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댄다.
상전벽해니 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작은 동네의 변화 속도와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삼청동은 원래 소규모 갤러리들이 밀집한 미술동네였다가 2000년대 중반이후 쇼핑과 외식을 즐길 수 있는 문화소비공간으로 변했다.
원주민들은 살던 낡은 집을 팔고 외지로 나갔고,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기존 갤러리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주인이 떠나간 자리는 국적을 불문한 카페와 식당들, 그리고 구경꾼들로 채워졌다. 말 그대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버린 것이다.
삼청동뿐만이 아니다. 경복궁 서쪽의 체부동, 누하동, 통인동 등 서촌 지역도 사람과 돈이 몰리는 변화의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거리라던 홍대 앞은 이미 먹고 마시는 쾌락의 공간으로 변했고, 소규모 문화공간들은 임대료가 더 싼 곳을 찾아 연남동, 합정동, 상수동, 연희동 일대까지 진출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요소가 돼버린 인터넷 지도들마저 주택이 헐리고 카페나 음식점으로 속속 바뀌는 세태를 따라잡지 못해 업데이트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왜 서울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도시사회학적으로 도시 발전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 때문이다. 본래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가 특정지역에 들어와 환경을 바꾼다는 ‘도심 재활성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자본을 가진 외지인이 유입되면서 비싼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주택의 가격이 상승하여 원주민들이 퇴출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공식은 단순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 공방, 스튜디오 등이 자리를 잡고 이어서 이들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인 카페, 식당 등이 들어선다.
그렇게 형성된 동네가 블로그, 방송 등을 통해 ‘물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나면 우후죽순처럼 카페와 식당들이 문을 열고, 당연히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된다.
결국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상점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동네가 뜨는데 왜 주민들까지 떠야 하는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병폐가 오죽하면 성동구 등 일부 자치구에서는 조례까지 제정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건물주들이 이익을 보겠지만 개발과 쏠림으로 인한 단물이 빠지고 나면 결국 지역이 특색을 잃어 다시 낙후화 되는 경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대문 남, 북가좌동이나 홍은동 같은 대표적인 주거지역에서는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현상이겠지만, 요즘 같은 도시의 변화 속도라면 뉴타운이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다 보면 먼 미래의 일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개발과 보존이 지혜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공공의 적극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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