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의 왜곡, 도에 지나쳐

윤희식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위원장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내년 2020년이면 40년이 된다. 당시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광주하고 좀 떨어진 해남이었지만 전남의 모든 지역이 마비상태였다. 머리띠를 한 시위대 형들과 유리가 다 깨진 시위대버스는 중학교 교무실을 들러 선생님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교정을 한바퀴 돌고 나갔다. 뭔 얘기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긴박한 버스시위대는 거리를 오가곤 하였다. 우리 마을 건너편엔 전투경찰대가 있었다. 경찰공무원들은 우리집 아래채를 빌려 살았었다. 5.18 당시 나는 비포장 길로 버스 30분정도 통학거리인데 교통수단이 없어 학교도 몇 일은 걸어서 등교를 했다. 2~3일후 휴교령이 내려지고 도로는 한산했다. 전투경찰대의 탄약을 우리 큰마당앞에 트럭채로 대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위의 누나, 동네친구들, 동생들, 그리고 전투경찰대 대원들이 그 트럭 주위에 있었다. 마치 전경대원이 무전을 받길래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 대원 형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내용이냐고…

그 전투경찰대원 형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시위대가 오며는 하체 아래로 사격을 하라. 는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고 또렷하다. 
땅끝 해남에서도 초긴박함이 전역을 휩쓸었는데 독안에 가둔 듯한 광주는 얼마나 참혹했는지 대학을 입학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그 원흉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생활도 강의실이 아닌 거리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광주에 민주투사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획득하였다. 유네스코에서도 5.18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할 만큼 전세계가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거룩한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 폭력을 사용했기에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시민군이 먼저 발포해서 계엄군이 발포했다, 민주화운동라는 단어 자체가 좌편향적 용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 찬양곡 등 이런 헛소리들을 외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지만원은 저서와 개인 사이트에서 계속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최근 전두환도 자서전에서 5.18북한군 개입설을 언급했다. 또한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극우단체는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 북한군이 광주까지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 대한민국 휴전선을 뚫고 내려왔든, 서해바다를 통해 왔든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는 것은 당시 군사경계가 붕괴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북한군이 내려왔다면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 9사단장으로서 서부전선을 지키던 노태우는 사형감이지 않겠는가.
‘폭력을 사용했기에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고 한다면 5.18은 원래 아주 평화적인 집회였다. 하지만 계엄군에 무자비한 진압에 견딜 수가 없어서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일어난 것이다. 최근 전일빌딩에서 헬기사격 흔적이 발견됐듯이 5.18당시에 계엄군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헬기를 동원해 선량한 양민을 학살하고 있는데 빤히 보고만 있어야 했단 말인가?
지난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진태 당대표 후보, 김순례 최고위원후보, 이종명 군출신비례 국회의원이 “북한군이 개입한 광주폭동, 전두환은 영웅”,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징계는커녕 옹호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제헌국회에서의 “반민특위가 국민분열을 가져왔다.”고 했다가 국민적 반발이 일자 ‘반민특위’가 아니고 ‘2019년 반문특위’라고 아이들도 하지 않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
방송에서 추적해본 결과 5.18 민주화운동 학살의 주범들은 호의호식하며 그 죄를 잊고 수시로 해외 다니며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때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들과 국민들은 지금도 그 때를 잊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다.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했던가? 그러나 이들은 왜곡까지 저지르고 있다. 그 악행의 끝은 어디쯤일까? 


 

키워드

#N
저작권자 © 서대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