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 가슴에 내리니

비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 때는 이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었다. 허나 이제는 창밖으로 눈을 돌려 비를 맞이 한다. 현관을 나서서 집 뒤로 돌아 길만 건너면 산자락이다. 주워들은 이야기를 들춰내 본다.

맨날 외상술만 먹는 헐렁이 아재가 오늘도 주막에 들렀다. 봄비 오는 날에는 동동주에 빈대떡이 제격이라며 술한병 받아들고 터억 버티고 앉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외상쟁이 술꾼에게 주모의 눈길이 고울리 없다.
한참 있다 주모가 한마디 했다. “아재 길 가시기 좋으라고 가랑비가 오네요.”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혜택을 준다. 큰 산, 넓은 들이라 해서 많이 내려주고 작은 풀꽃은 작다고, 보잘 것 없다하여 적게 내려주지 않는다. 고속도로 큰길이라 듬뿍 뿌려주고 시골길 산길이라고 뿌리지 않는다. 비는 똑같은 비니까 비를 맞는 생명들은 저마다 제 깜냥대로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우리네 마음에도 봄비가 함박내렸다.
내 한 마음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내렸다. 창밖에 내리는 봄비가 이 가슴 적시듯이 내 가슴에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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