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게 남과 비교 말라

맹자는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네가지로 나누었다. 착한 마음, 의리, 예우, 지혜 이 네가지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을 일으키는 단초가 바로 남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또한 의(義)를 일으키는 단초는 자신이 착하지 못한 마음과 행동을 부끄럽게 느끼고 남이 갖고 있는 착한 마음이나 행동을 미워하는 마음이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겸손함과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예(禮)를 일으키는 옳고 그름을 가질 줄 아는 마음이 지(智)의 단초, 이것을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 잠시 함께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소풍’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임종 순간에 아름다운 “소풍을 끝마치는 날”이라고 했다.
그의 시 “귀천(歸天)”을 읽고 있으면 취한 듯 살았던 인생의 아름다움을 엿볼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에는 인연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잠시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 또한 길지 않다. 아무리 욕심내어 머룰고자 해도 자신의 운명이 물거품처럼 일시에 한 줌의 흙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있다.
흑과 백을 구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검은 것은 무조건 나쁘고 흰것은 무한정 좋기만 하는 걸까? 문제는 본질이지 껍데기나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마음은 불변이란 없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하는 것이 아마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처음 마음을 가졌을땐 무쇠처럼 단단하고 콘크리트가 무색할 정도이다. 그러나 약간의 실망만 느끼면 그 무쇠처럼 단단했던 마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있게 마련이다. 또한 누군가를 믿었을때는 그 사람의 결점마저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반대로 미워할 때는 그 삶의 장점마저도 닙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어쩔수 없는 맹점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와 실수를 범하지만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미화하고 쉽게 용서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제삼자에 의해 비판된다.
사람의 일을 흑백으로 가르는 것만큼 위험한 사고는 없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사고 또한 또다른 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승자 아니면 패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여태까지 보지 않았던 새로운 미래가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든 열정적으로 집중한다면 삶 자체가 힘들거나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대로 살아야 한다.
상대가 어떠한 삶을 살던 자신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감에 가득차면 항해길에 오르는 배처럼 어느때는 한조각 구름같고, 자신의 생각을 하늘을 훨훨 날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한곳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또한 살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자기의 삶에 당황하기도 하고, 장애물에 가로막혀 어쩔줄 모르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할 것이다. 그 때 자신의 지혜에 따라 자신을 완성해 가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승리자가 되며 참다운 인격자도 될 것이다.
이제라도 삶과 죽음을 돌아볼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볼 때 고단한 세상살아에 그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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