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 끌고 가야

김 수 철
(전 서울시의원)

서양 속담에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지난 6월 마지막 날 남북미 정상이 회동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역사의 한 장면이고 긴장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속력이 전혀 없고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이벤트 하나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온 것처럼 들뜨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세 지도자의 비전과 용기와 결단의 산물! 사실상 종전선언을 천명한 역사적 날이다”라고 흥분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돌아보면 작년 4월 판문점선언에서 정전협정 65년이 되는 해에 종전선언을 체결하는 데 합의를 하였다. 정부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종전선언이라도 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였지만 합의를 실현하는데 실패하였다.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은 지속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국가, 언제든 무력 도발을 일삼을 수 있는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수용할 의사가 없었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그의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종전이 되려면 戰後(전후) 처리, 경계선 확정, 평화유지 구조 등 실질 문제에 대해 합의한 후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 핵 등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앞에 두고 종전선언부터 하면 마치 마차가 말을 끌고 가도록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웨인 에어 유엔사 부사령관은 작년 10월 “종전선언에 법적인 토대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유엔사령부의 존재와 왜 계속 있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성급한 종전선언의 문제점에 대해 경고 했다.
남북 대치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손학규 대표는 “과도하게 낙관적이고 조급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단 한 개의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핵시설을 중단하지도 않았다”면서 현 단계에서 적대관계 종식 등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단언했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 김정은 정권이 실질적으로 대남도발 의지가 없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작년 여러 합의 이후 북한이 그동안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남북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 철도도로 연결 등 다양한 청사진이 남북 사이에 합의 되었다. 하지만 약 215억의 예산이 투입되어 운영 중인 연락사무소에서 소장 회의는 지난 2월 2일 이후 현재 18회째 불발이 되었다. 남북 정상간 핫라인은 개설이후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9.19 공동선언에서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했으나 북한은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했다.
북한에 의한 합의 불이행이 이지경인데도 문 대통령이 “사실상 종전선언”이라고 서둘러 규정한 것은 꽤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남북관계와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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