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두언 의원, 마음 따뜻하고 서대문을 사랑했던 분

김 수 철
(전 서울시의원)

촉촉하게 가는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지기도 했지만 맞고 서있을 만 했다.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가 무거웠다. 침묵이 흘렀지만 간혹 서로를 위로하고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수준의 대화는 오고 갔다. 고 정두언 의원님 삼우제 행사의 기도 시간이 되었다. 눈을 감고 45도 쯤 고개를 숙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의 매지봉을 타고 오르는 바람들은 빗줄기 사이를 뚫고 내 볼을 가볍게, 부드럽게, 힘있게 스쳐 지나갔다.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볼 수는 없었지만 지나는 바람은 나뿐만 아니라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잔잔한 바람소리, 까마귀 소리도 귀로 몰려들었다.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삶도 죽음도 하나다. 죽음이 없으면 진짜 죽음이다”라고 말한 정의원님의 진짜 죽음 앞에서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서시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그분이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라 마음도 무디고 강할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제로 15년간 지켜본 입장에서는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분이셨다.
2004년 탄핵 광풍이 불었음에도 해방이후 처음으로 이곳 서대문을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된 후 캠프 식구들이 참여한 종로 워크샵에 초대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필자는 2005년 봄 한나라당 중앙당 사무처 축구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지역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았다. 그래서 한나라당 축구팀 대 광주전남 공무원들과의 축구 시합을 개최하였다. 그때 광주까지 찾아오셔서 격려까지 해주신 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정 의원님은 37세의 젊은 정치 지망생으로 중앙당 사무처 팀장인 저를 서대문 제 4선거구 지역에 공천을 주셨고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의원님 곁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총선, 대선, 지방선거, 당내 경선 등 수 많은 선거를 함께 치렀고 전투가 계속될수록 우리 팀의 전투력은 강해지고 전우애는 커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하고부터는 여의도 중앙정치에서 특별보좌역으로 그분을 도왔다. 특히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고부터는 전국을 순회하며 현안 기자간담회도 하고 또 지지자들과의 회합도 자주 가졌다. 부산 광안리 근처의 허름한 콩나물해장국 집에서 몇몇 지인들과 나눈 조찬은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지지자들 모두는 정 의원님의 개혁적이고 거침없이 바른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한국정치에서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다. 대구보다는 부산 쪽에서 인기가 더 있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뵈었다. 그날따라 술을 안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손수 소주 한잔을 따라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방송 잘 되시냐고 묻자 “내가 소진되어 가는 것 같애”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마음 속 깊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했다.
상주의 마음으로 빈소를 지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떠나시면서 선물도 주시고 숙제도 주셨던 것 같다. 먼저 정치와 인생, 자신과 아내, 그리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선물’을 주셨다. 정치에서 한번 잘못된 결정은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한 것을 주신 것이다.
삶 속에서 숙제로 받아드리는 것은 사랑의 실천, 진리의 추구, 정의롭게 살아가기 등 세 가지이다. 평소 소외되고 힘든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셨고, “서로 사랑하면 그곳이 천국이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열망했던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의 구현도 과제다.
마음은 따뜻했고 서대문을 더없이 사랑했던 분, 지금도 아니 시간이 가도 그립고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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