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욕망과 집착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욕망에 의해 굴절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한다.
소유를 향한 마음은 우리 앞에 끝없이 전도(顚倒)된 삶을 펼쳐보일 뿐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류를 따라 흘러가는 삶을 의미 한다. 그러나 그 길에는 아름다운 날을 만날 기약은 없다. 그러기에 우리네 인생은 파도치는 바다와 같다고들 한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절대왕권의 군주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시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에 근거하면 시민의 선택은 바로 권력이 된다. 더구나 투표로 결정되는 선거에서 유권자인 시민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절대왕정 시대와 같이 권력자를 향한 어법과 몸짓은 21세기 민주사회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직 국민 여러분의 뜻을 헤아려 분골쇄신 하겠다”고 유권자를 향해 허리가 앞으로 넘어갈 것 같은 아슬아슬하게 굽신대는 후보자들의 인사가 때론 서글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안타까울 정도의 간절한 호소와 인사로 끝나면 그런대로 눈물겨운 애교로 넘어가겠지만 넙죽 엎드려 큰 절까지 하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심각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무리한 공약과 품격 없는 공약 남발을 내거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블랙코미디이고 사이비 신흥종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무리한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헛된 공약들은 돈이라는 이기적인 욕구와 지역감정으로 유권자를 교묘히 자극하고 유혹하여 당선부터 되겠다는 음모와 술수일 뿐이다.
민주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현명한 지혜와 선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의 눈과 손에서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속이 뻔히 보이는 공약을 알아보는 눈을 유권자들은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후보를 거절하는 선택권 또한 발휘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먼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잇속만을 채우는 큰 도둑들을 발본색원해야만 한다. 그리고 냉철한 지혜와 따뜻한 자비심을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를 발굴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토대를 형성해 주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에 즈음하여 지도자로 나서려는 사람들은 국민 앞에 서기 전에 악행과 사견과 권세에 의지하려는 내 마음속의 큰 도둑은 없는지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법에는 공소시효가 있을지 몰라도 유권자들의 가슴속에 공소시효가 없다.” 이 또한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65년 영국 하원의원에 출마하면서 그의 선거공약은 정말 경이로움을 넘어 바보스러운 공약을 제시했다.
“본인은 당선되어도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 당선 뒤애도 소속 정당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지 않겠다. 선거에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시민들은 그런 그를 선택했다.
다가오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이를 닮은 후보자가 출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민주사회의 절대권력자인 시민들이 그들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보수는 훌륭한 두 발을 갖고 있는데도 걷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야당은 단일화 못하는 병을 “공익과 사익을 구별못하는 탐욕”이라고 했다. 모두가 잘난 탓에 스스로 경쟁력이 최고라고 착각한다. 착각이 병을 부른다. 내년 총선 뒤에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편으로 탐욕에 찌든 사람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기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 스튜어트 밀을 통해 아첨과 진정성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밝은 지혜의 눈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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