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신이 인간에게 두 가지 재주를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말 잘하는 사람에게 글을 못쓴다거나 글 잘 쓰는 사람에게 말을 잘 못하게 한다든지 두 가지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게 하는가 보다.
사람들은 작가를 글쓰기의 주체라고 굳게 믿는다. 작가 자신도 독자들이 작가를 “특정한 형태의 글을 아름다운 문장을 자유자재로 쓰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여긴다. 글이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되려는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학교나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의 실상은 이런 생각과 많이 다르다.
글쓰기는 일종의 노동이다. 이 경우는 작가는 신중하게글감을 결정하고,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준비하고, 글의 처음과 끝을 기획한 다음에 그것들을 글로 옮긴다. 인간이 글쓰는 노동에 매혹되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훌륭한 작가란 처음에 생각한 바를 한 치의 실수 없이 표현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의 계획 그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좋은 글, 즉 감동적인 글과 마음속에 와 닿은 주옥같은 글의 의미를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되새기며 자신의 행동거지와 연관하여 실천해 보이는 습관이 절실하다. 알면서도 실천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보통사람이자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는 글을 읽고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넘기듯 실천과 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더와 지도자들이 좋은 글들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정책에 반영에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대부분 그냥 글자로만 보았는지 현실 속에서 실천에 적용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
또한 혼자서만 잘 났다고 독야 청정하는 모양새는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악의 존재로 남겨질 뿐이다.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은 삶속에서는 또 실천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삶에서는 미래의 꿈도, 우리 아이와 젊은 세대들에게도 희망을 나눠줄 수가 없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아름다운 것처럼 평소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 바로 그 에너지가 글을 이끌어가는 힘, 즉 글쓰기의 진정한 주체이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갑자기 수다스러워 지듯이 그 글은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지치지 않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떤 것에 매혹되어 글을 쓰는 작가,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없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으로 말하자면 작가가 어떤 것에 매혹되기 위해서는 글을 쓰고 있어야 하고,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매혹되기 이전의 글쓰기와 이후의 글쓰기는 분명히 다르며, 많은 경우 문학 작품의 번득이는 부분은 후자의 결과물이다. 너무 감동적이고 좋은 글이어서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공유하고 싶은 글들을 퍼 나르기도 한다. 남녀노소 특히 리더층 즉 지도자들에게도 꼭 보여주어 그대로행하고 실천하도록 권해보고 싶은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께 실천하고 행해야 할 좋은 글과 말씀을 우리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해 보일 때, 모두를 위한 우리들의 더 나은 삶과 행복이 보장될 수가 있다. 훌륭한 작가란 처음에 생각한 바를 한 치의 실수 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인 것이다.
글쟁이는 신중하게 글감을 결정하고,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준비하고 글의 처음과 글을 기획한 다음에 그것들을 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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