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단상

시절은 봄이건만 새벽서리가 거친 것이 아니었다. 이내 동트자 산에 생강나무 꽃이 눈에 들었다. “봄은 봄이로구나”하는 짧은 감탄사가 다시 흘러나온다. 뒷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 그 옆에 천년도 넘었을 참나무 속이 텅 비어버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렇게 비우는 것인가보다 하였다. 속은 비었어도 가지는 역력히 살았다. 산새들이 하도 조잘거려 시끄럽다 하였더니, 아침부터 그 빈속에 하소하고, 공음의 답을 듣는 중이었다. 산너머 모처럼의 햇살을 만끽하는 아침 포행이다.
마을에서 족히 2㎞는 떨어진 후미진 시골구석에 중이 혼자 사는 일은 고즈넉하기도 하지만, 할 일 또한 제법 많다. 농사 준비해야 한다. 더덕 씨앗을 모판에 미리 뿌려두었고, 열부씨앗도 뿌렸다. 거름을 가져다 호박구덩이를 만들어야 하고, 박도 심어야 하고, 고추며 오이, 가지, 토란 등도 심어야 한다.
작년 늦가을 이곳 묵정논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들어와 살면서 맞이하는 척번째 봄이다. 그러니 묘목도 새로 심어야 한다. 나무시장에 가서 사다놓은 매실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사과나무 등의 괴실수를 도량을 둘러 심었다. 산에는 가시오가피, 두릅나무도 심었다. 그래야 내년 봄부터 세잎이며 순을 따서 반찬거리도 한다. 메어 놓은 참나무에 표고버섯 종균 심시는 이미 마쳤으니 한시름 놓는다. 밤과 새벽은 추워도 낮이면 봄볕이 따듯하다. 풍경소리도 봄볕을 받으면 음악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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