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흉기가 될 때

요즘 일 부 기업 임직원들은 방송사에서 골려오는 전화 받으며 “내 말을 몰래 녹취(綠取)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전 동의도 받지 않고 녹음을 한 뒤 전체문맥을 무시하고 방송 내용에 필요한 코멘트만 내보내 곤욕을 치른 경험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기업 임원은 ‘몇몇 방송과 신문은 대기업을 공격하는 내용이라면 팩트가 틀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다’며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전한다.
좌파 언론이 주로 이념적 이유로 기업을 힘들게 한다면 금전 갈취를 목적으로 괴롭히는 매체는 더 많다.
과거 여기저기 보도됐거나 증권 정보지에 나도는 “아니면 말고” 수준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보도하겠다며 입막음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 한다. 단골 메뉴는 최고 경영과 (CEO)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경영과정 루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공갈협박에 시달리는 기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정보화의 그늘인 “공룡 포털”은 생업형(生業型) 사이에 언론이 활개 치도록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부는 정치권이 명백히 잘못하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의식 라임”에 기인하거나 생계형 갈취를 위한 신문이나 방송, 잡지나 인터넷의 무책임한 과장 왜곡보도를 정당화하는 방패막일 수는 없다.
언론자유가 날조나 왜곡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말이나 글은 사회적 흉기(凶器)다.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오보(誤報)의 두려움에 떤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용을 잘못 알았거나 한순간에 “착오”로 잘못 보도할 수도 있다. 특종 오보가 종이 한 장 차이일 때도 적지 않다. 널리고 널린 언론사와 언론인의 질(質)을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는 취재의 정확성과 “게이트 키핑”의 엄격함이다. 때로 세계관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훨씬 부차적이다.
하물며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면 설령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상이라도 더욱 철저한 확인을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가슴이 뜨거워질수록 머리는 차가워져야 한다. 제대로 훈련을 거친 기자라면 이 원칙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를 둘러싼 일부 방송과 신문의 허위보도나 포털을 매개로 기업을 공갈로 먹고사는 사이비 매체의 창궐은 “취재 원칙 제1조 1항조차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낳은 각종 사회경제적 후유증은 또 얼마나 컸나. 프랑스 철학자 장 폴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펜을 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든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휘두르는 칼이 타인을 해치고 결국 자신도 찌른다는 당연한 진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취재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감과 비판 대상의 공과(功過)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다.
고요하게 포장한 허위 정보로 코로나19와 혼란을 부추긴 그 수많은 말과 글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그리고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말과 글이 더는 거짓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사회적 흉기가 되지 않도록 바로 잡는 계기는 될 수 있을까.”

키워드

#N
저작권자 © 서대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