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는 무아(無我)

참 나는 무아(無我)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다. 착한 행위를 하면 착한이가 되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결국 고???된 낙 없기에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 그것이다. 참 나는 무아요 무아는 대아(大我)이며, 대아는 시아(是我)다.
첫째는 무아(無我)다. 무아체험의 핵심은 대면관찰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에서 관찰하다 걸어가면 “걸어간다” 머무르면 “머무른다” 앉았으면 “앉아 있다” 누웠으면 “누워있다”고 관찰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걱정 근심이 일어나면 “걱정근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늙어 가면 “늙어간다” 병이 들면 “병들었다” 죽어 가면 “죽어간다”고 관찰한다. 몸과 마음 번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 초월한다. 이 관찰자가 바로 성품인 대아(大我)다.
둘째는 대아(大我)는 크고 밝고 충만하다. 마하는 금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밀이 “나”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크고 밝고 충만하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그러므로 앉으나 서나, 어나가나, 지나가나 “마하바라밀”을 구념심행(口念心行)하도록 한다.
마치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고 차를 몰 때 왼도우 브러쉬가 바로 눈앞에서 왔다갔다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대아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소아는 저절로 쉬어간다.
셋째는 시아(是我)다. 이것은 나다. 바로 지금 여기서 이것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아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키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도 할 뿐! 거기에 나는 없다.
다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 밥 먹을 땐 먹을 뿐! 잠 잘땐 잠 뿐! 공부할 땐 공부할 뿐! 일할 땐 일할 뿐! 노래할 때 노래할 뿐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이 행위가 나를 창조한다. 구걸하는 마음 연습하면 거지, 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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