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와 멋진 사람

우물우물 지껄여대거나 수군거리는 소리를 일컫는데, 요즘 정국 같아선 “삿된 의도로 사람들의 꿈을 갉아먹는 소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벼농사를 지어 가장 튼실하고 건강한 볍씨들을 따로 모아 토방에 고이 모셔두고 겨울을 나는데 그것이 씨 나락이다. 농부에게는 꿈이며 삶의 가치이며 생명이다. 배가 고프다고 씨 나락까지 다 끓여먹으면, 농부와 그 가족의 생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멋쟁이와 멋진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사람마다 보는 시각과 느낌에 따라 다르지만 나의 견해로 본다면 멋쟁이는 외형적 감각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센스 있는 사람이다. 멋진 사람은 멋쟁이에다 행동과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행동이 훌륭하다는 것은 세포 하나하나에 익혀져 나오는 인품이 주는 품격이다.
그 사람 “멋쟁이야” 표현은 누구나 쉽게 표현하지만 그 사람 “멋진사람”이라는 표현은 그리 쉽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외형과 인품이 두루 갖추어진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내가 멋지지 않으면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곁에 멋진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멋지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멋지다는 품위는 달라질 수가 있다.
남도에 매화꽃이 수없이 피고 있던 봄 날, 내소사 지장암 차실에서 멋진 사람을 만났다.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잡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신창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봄 다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시인이라면 구태여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아침 일찍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에 손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바람을 베개하고 바위에서 한가히 잠든이가 보는 바람, 묻지 않고 떠나버렸다. “멋진 사람”의 내용이다.
족자에 담긴 글 한편을 읽어 내리면서 얼마나 담백한 삶을 살아오신 분인지, 얼마나 멋진 맛을 아시는 분인지 감히 짐작 해 본다.
차실 곳곳에 느껴지는 선배에게 뛰어난 예능적 감각은 시를 곱씹게 했다. 시가 차실이 아닌 대중 방이나 선배의 방에 걸려 있었다면 품위 있는 글보다는 마음에 새길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지고 덜어내고 그 반복이 수없이 이루어졌을 때 사물을 바라보는 느낌, 시선은 맑고 향기롭다. 그 향기로움을 공유하자고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연주자는 악기를 다루며 제 각기 표현을 한다.
평범한 정서가 아닌 아주 전제되고 정화된 정서는 연결이 되기 때문에 우리 음악, 그림, 시에 감동을 받고 그 내용 속에 공감을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을 우린 예술이이라 한다.
그 예술은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 연결되어 있는 일상의 표정이 예술인 셈이다.
즉 살아있는 삶 자체가 예술적인 값어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봄날 차실에서 팽주가 따라주는 성매화차 꽃향기보다 더 향기로운 것은 봄 다가는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이런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굳이 도(道)를 논하지 않아도 한편의 시를 거든히 건드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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