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거친 손 잡아주는 것도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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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를 놓쳐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사는 비혼(非婚)자들이 우리 주의에 늘어나고 있다.
비혼자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 낳아 자녀를 양육하는 삶이 의미 없어서 결혼을 제껴두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가족에게 회생되고 소모되는 삶을 꺼리는 것이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비혼자들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에 있다. 과거에 비해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에게 “네 아버지, 어미 이름이 뭐냐?”하고 묻는다면 젊은이들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 딴 걸 왜 물어요? 냄새나게!”
음력설을 맞아 우리는 얼마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했는가? 우리가 늦게 귀가해도 아랫목이나 이불속에 밥이 묻혀 있던 시절의 추억이 왜 그리워질까? 요즘 비혼자들과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답이 나온다. 아무리 술에 취해 들어와도 속 버리지 말라고 밥상을 차려 내오시던 어머니, 가난했지만 가족 간의 정은 훨씬 부자였던 시절,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나 비혼자들은 대다수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다 보니 그따위 것은 알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결혼을 하였다면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은 아무리 제 입에 맞지 않아도 정성껏 먹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어머니에게 길 드려진 밥상에 아들, 딸의 입맛에 솜씨 좋은 아내도 따라가기 힘들지만 아내의 힘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아도 그냥 먹고 마는 남정네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이런 것을 모두 이해하였으나 결국 남성들은 가정은 진솔한 대화나 끊임없는 관심, 따뜻한 배려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남성들이 갖는 실정이다. 가정 남들은 쌓이는 가족애 등이 가정을 병들게 하는바이러스를 퇴치하도록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핵가족 시대를 맞아 효(孝)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다.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망을 앞세워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과연 그만큼 행복해지고 있을까?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풍요가 함께 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고 싶은것 다하고, 갖고 싶은것 다 가져도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다.
효(孝)는 부모에게 좋은 비단옷이나 산해진미를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효라 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 바다같이 넓어서 글이나 말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부모의 사랑이야기다.
예수께서 “은혜를 모르고 효를 모르는 사람은 독사에 비위한바 있다”. 구렁이는 알에서 태어나지만 살모사 같은 독사는 태어나면서 어미를 죽이기 때문에 비유한 말이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으로 그 끝이 하늘에 닿아있다고 한다. 그러한 산을 부모님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오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이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의 사랑이 크고 깊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잠시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다. 아무리 욕심내어 머물고자 해도 물거품처럼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몇 년 전 TV에서 아들이 움직일 수 없는 부모님을 지게에 지고 편안하게 금강산을 구경시켜 드려 화제가 된 일도 있다. 이 모두가 효를 갖추는 기본 독목이 아닐까?
이번 설날에 고향을 찾아간다면 부모님의 거친 손 한 번 잡아주시고 부모님 살고 계신 곳이 춥지나 않으셨는지. 부모님 이부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셨는지를 생각하고, 챙기는 것이 모두가 효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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