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은 무상(無常)한 것

 

이 우주(宇宙)의 삼라만상(森羅萬象)에서 상주(常主)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유기물(有機物) 무기물(無機物) 할 것 없이 모든 원소는 열(熱)과 시간(時間)에 의해 변(變)해가고 있다. 고체(固體)가 승화하여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가 응결되어 물질이 되기도 하며, 열에 의하여 변하는 것도 있고, 라트륨처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반감(半減)되는 것도 있다. 그리하여 이 우주(宇宙)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생겨나면 변(變)하고, 변화하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흩어져서 또 다시 생겨나는 성주괴공(城主壞空)의 법칙에 따라 유동불식 한다. 그러나 원소의 양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이 우주 현상계 모든 것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셨고, 원소의 양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을 부증불감(不增不感)이라 하셨다. 또한 인간(人間)의 영혼(靈魂)은 자연전력(自然電力)의 한 부분이며, 육체(肉體)는 지구 원소의 부분으로서 생겼다가 잠간 사이에 흩어져 본래로 돌아가는 것을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셨다. 인간(人間)은 육신(肉身)으로 보나 영혼(靈魂)으로 보나 모든 이치를 알고 보면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사실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인간(人間)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은 본질적(本質的)으로 유한(有限)하기 때문에 무한(無限)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에 비해 인간의 삶이나 물질(物質)의 존재는 아주 찰라적이며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꽃은 며칠 동안이며, 우리 육신(肉身)은 몇 십 년 동안이며, 지구(地球)는 몇 겁동안 일 뿐 다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시간을 초월해서 긴 안목으로 보면 다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구름처럼 실체(實體)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형체가 있는 것도 곧 없는 것이나 다르지 않고, 형체가 없는 것도 곧 있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애는 젊은 듯하다가 곧 늙어져서 윤기있고 깨끗한 피부에 검푸른 버섯이 피고,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미인은 늙어지고, 애인은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부귀영화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복 곁에는 반듯이 불행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생(生)은 종말(終末)로 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人生)이 산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의 길로 삭막한 공동묘지를 향해 행진한 끝에 마침내 2,000℃가 넘는 뜨거운 화장터 불속에 잠시간에 하얀 백골 한 줌으로 남을 신세를 못 면하니 귀인 천인 할 것 없이 한 땅 속에 흙 밥이요, 영웅, 재벌, 숙녀, 미인도 한 줌의 티끌로 사라진다. 인간이 지닌 꿈과 욕망과 사연이 한줌 흙으로 볼 때 얼마나 무가치하고 허무한 일인가?
이와 같이 무상(無常)하건만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고 돈 모아 쌓는데 충혈 된 눈을 번뜩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명예니 사랑이니 아웅 다웅 각축하다가 병(炳)이 들어 죽고 만다. 이렇게 한 사람 또 한 사람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고 마는 것이다. 태어나면 반듯이 죽고, 만나면 반듯이 이별이 따르는 것이다.

“다 버리면 마음이 편해지네.
싸울 일도 없구나.
산다는 것은 구만리 장천에 떠도는 한 조각 구름.
오는 곳도 가는 곳도 모른다네.
둥실둥실 끝없이.
창공에 바람 따라 흘러갈 뿐이라네.
한 물건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한 물건 가지고 갈 물건이 있겠는가.
이 세상에 다 모든 것 빌려쓰고]
빗만 지고 그냥 가네.
이 생에 한 물건도 
저 세상에는 쓸모없네.
그러나 보이지 않은
지은 죄 지은 빚은
저세상에 가져가서
두고두고 갚는다네.”

이 세상에 태어난 자 누가 죽지 않으리요, 서구에 유명한 물리학자, 의학자가 현대문명의 불치병인 암이나 에이즈를 단방에 나을 수 있는 양약을 발견하여 죽어가는 환자를 찰라에 낫게 한들 얼마나 영원할까. 허영에 들뜬 사람들은 하루에도 시류(時流)따라 몇 번을 바꿔 가면서 벼슬을 탐내고, 명예를 얻고, 고층 빌딩을 짓지만 아무리 올라가 보아도 그것은 허무(虛無)뿐일 것이다. 아무리 학문(學文)을 깊이 파고 들어가 봐도 그것도 역시 허무(虛無)일 뿐이다. 육신(肉身)은 땅 속에 썩고 영혼(靈魂)은 윤회(輪廻)를 못 면하니 사랑이니 재물이니, 명예니 그런 것을 다 무엇에 쓴단 말인가.
50세를 살든 120세를 살든 마지막 죽을 때는 다 같은 것이다. 많은 소득을 얻고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렸다 해도 마치 도둑에게 뺏긴 것처럼 죽을 때는 빈손과 알몸으로 돌아갈 뿐이다. 명예(名譽)와 부귀(富貴)도 아침 이슬과 같고 영화(榮華)와 괴로움도 저녁연기와 같은 것이니 세상(世上)은 헛꽃 나툼이요, 중생(衆生)은 음애(陰崖)의 결정(結晶)이며 인간사(人間事)는 영락(榮樂)의 꿈이로다. 빈손 들고 왔다 빈 손 들고 돌아가니 허공(虛空)에 구름 떠가듯 표현이 사라지고, 희로애락(喜怒愛樂)의 기복도 지나가면 덧없는 것이다. 온 것은 가고, 있던 것은 없어지고, 백년(百年)도 채 못살고 죽고야 마는 것을 내 것이라 집착(執着)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황냉(荒冷)한 잡초(雜草)속에 꿈을 묻고 쓰러질 뿐이다.

“공산(空山) 낙일(落日) 깊은 밤에 두견새 슬피 울고
하늘가에 외로운 달이 서산(西山)마루 기울 때
적적(寂寂)무인(無人) 쓸쓸한데 고혼(孤魂)도 슬피 우리”

인간들이 재아무리 위대하니 슬기로우니 해도 나고 죽는 괴로운 고통 업에 얽혀 허덕이니 그 무엇이 위대하며, 그 무엇이 슬기롭단 말인가.
“황홀한 아침 해는 뜨는 듯 낙일이요
연두색 봄 언덕은 푸르른 듯 누르고
검는 듯 희는 백발은 한 생애가 찰라 로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다.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하니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이라.
태어남은 한 조각구름이 나타남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구름이 없어진 것과 같으니,
구름 그 자체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는 우리는 이와 같으리라.

대한불교 무량종 지리산 칠보정사
효종 혜안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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