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빙의령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들과 삼라만상 산천초목 곤충까지도 태어나기 이전에는 무엇이었으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닌가. 황야에 주인 없는 야생마처럼 놀라서 한 마리가 뛰면 그 무리들이 뛰어 달릴 것이다.
왜 뛰는지 어디를 향해 뛰는지 들소 떼처럼 우리들 역시 나날이 죽음을 향해 언제 어디로 갈 줄도 모르면서 남 따라서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제 어디로 갈 곳을 한 치 앞도 모르고 살면서 이생에 태어나자마자 온갖 물질에 매혹되어 집착하고 먼 곳에 있는 남의 것만 구하는데 급급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 우리들의 다반사가 아니던가. 부처님 말씀에 현재는 과거에 지어놓은 모든 결과 즉, 인과(因果)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으니 과거에 김씨가 이생에서 박씨 가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고대광실 높은 집에 갖은 부귀와 권세를 잘 누리던 이가 아랫동네 송아지로 태어나는 이치가 그러하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이라 했다. 누구든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 줄 안다. 가만히 방에 혼자 있다 문득 밖에 그 친구가 올 것 같은 느낌에 뜻밖에 그 친구가 왔던 일, 지금 막 그 삶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던 일, 뜻밖에 지난밤 꿈에 보았던 낯익은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개를 전문적으로 잡는 사람이나 도살 인이 오면 꼬리를 감추고 떨고 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감각으로 경계심을 발휘하여 꼬리를 흔들거나 이빨을 내놓고 짖게 된다.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얼마 전에도 허겁지겁 법당을 들러서 내가 머무는 심허당으로 낯선 보살들이 4명 올라왔다. 그런데 그분들은 울산에서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들어오자마자 예를 갖추고 삼배를 올렸는데 그 중 한 젊은 보살이 마지막 삼배를 하고 일어서서 나를 보는 순간 얼굴색이 붉었다 푸르렀다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어디에선가 많이 보고 친숙히 지내던 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보살 역시 분명히 언제인지 어디서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많이 보아 낯이 익다고 하면서 당황해 했다.
현재 내 주위의 많은 신자님 중에도 꿈을 꾸고 찾아오신 분들이 찾아와 보니 꿈에 보았던 절이고 스님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상 여러 가지 예가 바로 영감이요, 직감이요, 텔레파시(telepathy)요, 영겁이요, 파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낯익은 느낌은 이생이 아닌 과거 생에 서로 만나던 사람 
,살았던 장소가 찰나의 영감(令監)으로 업감(業感)으로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감(靈感)이나 업감(業感)을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한 전혀 느끼지 못한 삶이 많다.
나는 가끔 빙의가 되어있는 많은 신자들을 접한다. 그 중 가끔 평상에 들게 하여 자기 몸속에 빙의 된 영혼을 찾아내어 그 영혼의 전생에 인과 관계를 알아 그 빙의(영가) 소망을 풀어주고 불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천도를 시킨다. 또한 인간은 무의식중에 초능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적 완전한 이완 상태에서 명상으로 들어가게 되면 잠재의식(7식8식)이 나타나고, 잠재의식 속에 담겨있는 무수한 과거의 경험을 떠 올릴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인간 내면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잠재능력과 우주 의식을 끌어내어 자신과 타인의 영적 문제를 연관식 시켜 과거나 현재에 맺어진 인연과 업보의 그 내면을 알게 되고 영식(靈識)과 능력을 얻게 되어 자신의 몸속에 있는 자기 보호령이 아닌 영혼 빙의령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영가나 빙의령이 머무르고 혹은 제령으로 인해 영계로 떠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고 무의식 속에 기억되어 있는 전생의 사건과 경험들을 재생시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빙의는 사람이나 동물이 살아 있다가 죽은 후에 육체를 잃은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의 몸은 본래 자성의 영혼만이 살 수 있는 집이지만 그 집에 어떤 이유로 다른 영혼이 들어오게 되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각 영혼은 자신만의 고유한 영적 과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외부 침입자의 파장이 주체자에게 접혼 되면 이상한 파장이 일어난다.
일종의 에너지 생명체인 영혼에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본래의 신체적 리듬에 혼란이 올 수 있고, 그 혼란이 깊어질수록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심령 적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그 심령 적으로 일어나는 지령은 현대 과학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불치병들이었다. 육체적으로 병고를 당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이상이 오기도 하고, 육신과 정신을 떠나 주위에 있는 사물에게까지도 과정이 오기도 한다. 즉, 일상생황에 부딪히는 사업장, 차량, 주택, 온갖 상상할 수 없는데 까지도 파장이 요동하는 경우가 있다. 빙의된 자의 예를 하나들면 창원에 사는 신자○○ 장녀 창원○○ 고등학교의 28세 임○○여교사는 몇 년 전부터 남자 친구를 한 분 사귀었는데 사귀고 난 후부터 그 남자친구는 매일 본성을 잃고 괴롭혀 왔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극도에 달하여 학교에 사직서를 쓰고 그만두어야 할 형편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영가천도 후 바로 정상 회복되어 현재 학교에서 충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또한 사물이나 환경을 떠나 직접 육신에 온 영가의 예로는 서울○○ 대학병원에서 척수 골수암으로 판명되어 6개월 시한생명을 받았지만 제령 후 정상적인 체질로 돌아온 최○○씨가 있다. 또한 마산에 사는 김○○학생은 학교를 잘 다니던 여고1학년생으로 정신적 이상으로 병원과 무속과 온갖 방법으로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을 때 명상으로 제령 하여 지금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처음 학생의 부모가 차에 태우고 절에 들어섰을 때 나는 학생의 육신에 붙어있는 빙의령을 보고 ‘좋게 보낼 때 나가지 않으면 호되게 쫒아내겠다’고 하니 학생에게 들어있는 빙의령이 듣고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네’하면서 자신 만만하게 기세를 부리기도 했다. 즉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부분의 빙의령은 이승에 의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망(迷妄)으로 인해 구천(九天)을 헤매고 있는 영혼들이다. 특히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즉음을 당한 자기의 육신이 영안실로 간 후 사고 당한 곳에서 육신을 찾으려다 하루 이틀 한 달 1년을 기다리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나 영파가 맞는 사람을 발견하면 육신에 머물고 싶은 본능적 욕구로 다른 사람에게 접신(接神)이 된다. 
자동차 사고가 자주 나서 사람이 잘 죽는 곳에 계속적으로 사고가 많이 나는데 그 이유는 도로여건상 사고가 잘 날수 있는 조건도 있겠지만 사고를 당해 자기 육신을 갑자기 잃은 영가가 기절을 한 후 시체는 병원으로 무덤으로 살아진 후 혼비백산(魂飛魄散)했던 혼이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몸은 간곳이 없어 항상 그곳에 머물면서 자기 육신을 찾고 있다가 전생에 자신의 몸과 흡사하고 파장이 맞는 사람이 지나가면 그곳에서 죽은 혼이 다른 사람을 자기 육신으로 착각하여 접신이 될 때 영가의 파장 작동에 의해 잠시 정신을 잃고 찰라 순간 생각과 시야에 오차로 인해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또한 생전에 미처 풀지 못한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영혼은 원한의 대상이 되던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원한을 가진 영혼들은 대부분 상대방에게 신체적 영적 불이익을 주기 위해 끈질기게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되고, 드물기는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그 사람의 목숨을 노리고 덤벼드는 악령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들길, 산길, 허공, 산천, 음침한 계곡에 신당을 차려놓고 신을 많이 찾는 기도처나 허기진 영가들이 잔치로 생각하고 많이 모이는 상가 집에도 유주무주 고혼이 들끓으니 기백과 기력이 허약하거나 운수가 사납고 마음과 정신이 허한 분들은 상가 집 출입도 영계(靈‘界’)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가리라고 한다.
첨단과학이 발달된 과학 문명시대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 이야기로 들릴지는 몰라도 어두운 밤에 사람은 볼 수 없어도 개나 고양이는 밤길 가는데 사람보다 뛰어난 것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이다. 
부산 앞 바다에 뱃고동 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배가 없다고 할 것인가. 우리는 내 몸속에서 밤낮으로 일분도 되지 않고 뛰는 심장 박동 소리도 듣지 못하고, 눈하고 제일 가까이 있는 자기 눈썹도 볼 수 없는 그런 하찮은 존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볼 수도 생각지도 못할 육도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찮은 중생계에서 다행히 좋은 세상, 좋은 시절에 사람 몸을 받은 찰나의 이생 때 늦고도 바쁘니 열심히 부처님 말씀을 근행하여 무생 법인을 성취하고, 부지런히 아미타불 명호를 찾아 정토 극락세계 상품상생 해야 할 것이다 .
대한불교 무량종 지리산 칠보정사 
효종 혜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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