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신앙에 대하여

 

아미타경(阿彌陀經)

한문번역: 구자국(인도) 삼장법사 구마라즙(350~409)중국의 요진때 2세 요흥왕의 칙명을 받고 홍씨 4년에 번역하였다.
내용:아미타경은 소경이라고 하는데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사리불존자를 상대로 하여 설하신 법문이며, 극락세계의 찬란한 공덕 장엄과 그 극락에 왕생하는 길을 빍히신 경전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 위해서는 작은 선근(善根)이나 작은 복덕(福德)으로는 불가능하니 길은 선근과 많은 복덕이 되는 염불에 의하여 극락에 왕생하라고 권하셨다. 또한 동서남북 상하 6방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께서도 염불 공덕의 위대함을 찬탄하고 증명하신다 하셨다.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말씀하신 경전은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열반경(涅槃經), 능엄경(?嚴經) 등 실로 200 수십부에 달한다. 특히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보현보살이 선재동자를 깨우치는 법문이 있다. 보적경에는 석존께서 아버지이신 정반왕께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간절히 권하였다. 그리고 마명보살(불멸수 600년경)의 기신론 용수보살의 십주비파사론과 지도론 세친보살(4·5세기) 정토론 등에서도 염불은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과 근본서원(본원)을 확신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보살이 감응(感應)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수행(修行)하기 쉽고 성불(成佛)하기 쉬운 이른바 이왕이수(易王易修)의 행법(行法)임을 찬양하였다. 또한 중국(中國)에서도 혜원, 천태, 영명, 연수, 증봉, 연지 대사 등 불교유지에 공헌한 대선사들이 염불을 창도하여 자행화타한 선지식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신라(新羅)의 원효대사(元曉大師), 자장, 의상 대사 등과 고려(高麗)의 대각국사, 보조국사, 태고 보우국사, 나옹 화상 등과 조선에서는 함허선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이 선(禪)과 염불(念佛)을 융합한 선정일치(禪定一致)의 경지(境地)에서 염불(念佛)을 역설하였다. 특히 서산대사(西山大師)는 그의 선가귀감에서 마명과용수가 다 높은 조사(祖師)이면서도 염불왕생을 권장하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염불을 안 할까 보냐 라고 간절히 염불을 근명하였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이실 뿐 아니라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三身)을 겸지한 삼세(三世) 일체불(一切佛)의 본체(本體)로서 그 영원(永遠)한 생명(生命)과 자비를 위주로 할 때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요, 무한한 지혜공덕을 위주로 할 때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며 대자대비를 위주로 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다.

3. 미타염불(彌陀念佛) 대하여
정토선(淨土禪)의 염불법(念佛法)은 행주좌와(行住坐臥)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육자(六字) 명호(名號) 염불(念佛)로 만념(萬念)이 일념(一念)으로 돌아가 입정(入靜)하게 하고 그후 불호(佛號)마저 잊어버리면 무념(無念) 무상(無想)이 곧 진심(眞心)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나타나게 되고 부처님을 뵙게 되는 것이다. 즉, 염불(念佛)은 정토(征討)요 성불(成佛)지도는 무념(無念)이다 염불의 목적은 만법(萬法)을 일법(一法)에 동성(同姓)시키는 것이다. 만념(萬念)을 일념(一念)에 돌아가게 하고 심령(心靈) 무념(無念) 선정(禪定) 합일 후에 아미타불의 영접과 안내를 받아 서방정토에 왕생한다. 선(禪)은 심중(心中)에 무념(無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불(成佛)하려면 명심견성(明心見性)하여야 한다. 최초 선종(宣宗) 조사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하였고, 그 후 화두(話頭)로 전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時代)에는 말법시대(末法時代)라 진법(眞法)으로 떨어져 중생근기가 약해서 화두(話頭)로부터 개오(開悟)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선정(禪定)도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어 화두(話頭)로 개오(開悟)하기로는 더디다. 그러므로 말법시대(末法時代)인 지금은 심령을 다스려 진심의 정상을 회복하는 것을 첫걸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토선(淨土善)은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도달하도록 한다. 그리고 하근기 중생들에게는 아미타불의 염불신앙이 없다면 극락왕생하기가 어려우니 미타염불 신앙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전생에 적덕을 짓지 않는 이는 만날 수 없고 복(福)없는 이는 만나더라도 믿지 않고 어둠에서 헤매 일 것이다. 정토선(征討禪)의 법문은 부처님이 직접 전수하신 것이니 천 가지 만 가지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다. 치심(治心)의 방편(方便)이다. 정토선(征討禪) 염불선(念佛禪)은 행주좌와(行住坐臥)간에 행한다.

 

염불(念佛)의 의의
온갖 번뇌(煩惱)를 소멸하고 정각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또한 경전의 말씀과 같이 작은 선근(善根)과 작은 복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큰 선근과 거룩한 복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염불(念佛)인 것이다. 우리 본래(本來) 자성(自性)이 부처님이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부처님의 명호(名號)이기 때문에 염불(念佛)이란 곧 자성불(自性佛)을 생각하고 자성불(自性佛)에 돌아가는 법이 자연의 수행법인 것이다. 또한 염불(念佛)은 부처님의 본위에 들어맞는 수행법(修行法)일뿐 아니라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기억하여 호념하시는 수행법(修行法)이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에 비하여 불보살의 가피가 수승함은 여러 경전이나 수많은 영험록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능엄경”에서도 석존께서 나는 일찍이 수행할 때에 염불로서 무생법인에 들었느니라 하셨고 “관무량수경”에는 염불하는 이는 모든 사람가운데 향기로운 연꽃이니라 하셨다. 그래서 염불(念佛)은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자성선(自性禪)이라고 하고 또한 모든 삼매(三昧)의 왕(王)이라 하여 보왕삼매라고 하는 것이다.
염불(念佛) 삼매경(三昧境)에 이르기를 염불삼매(念佛三昧)는 일체(一切) 모든 법을 다 포섭하였으니 이는 성문, 연각의 이승경계가 아니니라 하셨다. 소용돌이치는 현대문명의 폭류속에서 비록 우리들의 착잡한 인연(因緣)이 성불의 대도로 직행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고향인 극락세계와 본래(本來) 자성(自性)인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보편적인 인생관과 그에 따른 성실한 수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일체 현상이 모든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은 허망 무상한 가상에 지나지 않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번 최상 행복인 극락세계의 영상을 지니며 최상의 개념인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생활은 우리 자신을 정화하여 그만큼 성불의 경계에 다가서게 한다. 이는 곧 영생(永生)의 대도에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결정신심을 잔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염불생활은 현대인의 불안한 의식과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다시없는 청량제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염불선(念佛禪)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 불심(佛心)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文字)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禪)과 교(敎)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이다. 또한 일체만유(一切萬有)의 근본자성(根本自性)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그래서 극락세계를 염(念)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생각하며, 그 명호(名號)를 부르는 염불(念佛)공부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참선(參禪)공부와 본래 우열이 없으니 염불(念佛)과 선(禪)은 일치(一致)한 것이다.
 염불(念佛)과 참선(參禪)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定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마음 가운데에 들어 계시느니라” 했다. 바로 32상과 80수형호를 갖춘 원만 덕상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라 하셨다. 또한 일체만유(一切萬有)의 근본자성(根本自性)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이요. 극락세계 역시 자성(自性)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되면 그에 상응(相應)한 삼계(三界) 육도(六道)의 윤회(輪廻)하는 고뇌(苦惱)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本來)의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今生)과 내세(來世)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한 극락세계의 청정한 행복(幸福)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작은 선근이나 작은 복덕으로는 불가능하니 깊은 선근과 많은 복덕이 되는 염불에 의하여 극락에 왕생하라고 권하였다.
염불선(念佛禪)의 극치(極致)에 이르면 음향진동(音響振動)이 온몸에서 일어나 온몸에 산재(散在)해 있는 모든 관문(關門)과 혈맥(血脈)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뚫어 주천(周天)를 이루게 되니 전신(全身)이 감로(甘露)의 도가니에서 목욕(沐浴)에 잠긴 듯 미세하면서도 무수한 전극(電極) 전선(電線)줄의 전류에 감전된 듯 황홀한 무극의 경계에서 모태(母胎)속의 자신을 보게 되리라.

대한불교 무량종 지리산 칠보정사
효종 혜안 대종사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서대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