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을 때는 언제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2.2세라고 한다. “자네가 몇 살이더라?”라고 묻는 질문에 “이제 막 100세가 되었습니다. 형님”이라고 답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스무 살에는 원하는 대학에 가고, 서른 살에는 좋은 곳에 취업을 하고, 마흔 살에는 결혼을 해야겠다. 이 계획이 대부분의 친구들이 입을 맞추듯 비슷하게 꿈궈온 인생 계획이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나이가 들어감에 그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 삶의 계획에는 죽음이라는 게 있을까?
언젠가 삶과 죽음은 같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삶이 시작되고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점점 가고 있다는 말. 그래서 삶과 죽음은 같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을 계획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며칠전 죽음 명상에 관한 영상을 봤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관에 들어가서 죽음 명상을 체험했다. 관에서 나온 뒤 말했다. “아들을 위해 오래 살아야겠어요.”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또 한사람도 체험을 하고 난 뒤 말했다. “내가 죽는 건 괜찮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못해준 게 후회된다. 더 잘해주고 싶다.” 이 두 개의 영상을 보다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자신보다 자신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후회가 남는 다는 점,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깐.
불교박람회를 체험하며 우연하게 입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예정되어있던 일정이 아니었기에, 정식체험보다 매우 간소화하여 체험을 진행했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니 어둠이 밀려왔다. 관 뚜껑을 세 번 두드리면 나는 죽는다고 했다. 쾅!쾅!쾅! 내가 죽었다. 길지 않은 시간 나는 죽어있고 관 뚜껑이 열리며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체험을 하곤,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이생을 마감한다고 하여도 하루하루를 재밌게 살아왔으니 후회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금방 가족들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어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부모의 만남으로 태어남이 있듯이 죽음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장례식, 그 장례식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장례식을 치르는 ‘생전 장례식’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짐에 따라 해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생전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슬퍼하며 울음이 가득한 장례식이 아닌 노래하고 춤추며, 작은 축제 같은 장례식이 진행된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걸 무겁게만 느끼지 않더라도 막상 죽음이 다가온다면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올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 순간 현재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고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맑힌다 했는데 시월이 다가는 때에는 곱게 물든 은행잎처럼 마음 잎이 곱게 곱게 물들어 생각을 해도 선한 생각만 하고 말을 하나 해도 깨끗하고 복스러운 말을 하며 행동을 해도 깨끗하고 복되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동안 편안한 삶이 아닐지. 예쁘고 평범한 돌로 쌓은 탑은 일찍 무너지고 작고 못생긴 돌들이 고임돌로 들어간 탑이 오래가듯이 인생도 나쁜 일과 좋은 일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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