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란 말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겠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남이가’ 이 말은 누군가에게는 좋게 들리고 누구에게는 듣기 싫은 말이 된다. 나에게 나와 남의 기준은 간결하다. 꼬집어 아프면 나이고 안 아프면 남이다. 아무리 자기 살이라도 감각이 없으면 남의 살 같다고 하지 않는가. 정겹고 따뜻할 수 있는 이 말이 안 좋은 이유는, 많은 경우 서운함을 말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때, 혹은 친절을 가정하여 다가갈 때 쓰기 때문이다.
‘우리 남이 아닌데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나’ ‘우리가 남도 아닌데 이런 부탁도 못 들어주나’ ‘우리가 남도 아닌데 내 편을 들어줘야지’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른 이를 ‘우리’라는 범주에 넣고, 그 안에서 같은 생각을 강요하며 생각이 다르면 ‘우리가 남이가’라며 서운해 한다.
이런 생각은 정에 휩쓸려 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너와 내가 하나라고 우기던 사람들도 이견이 생기면 다투고 상처를 주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분파주의가 된다. 우리 편이기에 무조건 생각이 같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다.
그러나 ‘매일 그대와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라고 속삭이던 연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기도 하고,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겠다며 결혼한 부부도 세월이 흐르면 그저 생사만 확인하면 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자식은 어떤가? 내가 낳아 키운 자식이기에 남들에게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요’라고 당당히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떨 때는 저런 ‘원수’가 없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모습도,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다. 그래서 욕망도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의 욕망대로 상대를 휘두르려 한다. 그러다보니 마찰이 생기고 마음의 병이 된다. 그래서 요즘 TV만 틀면 상담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라는 틀로 묶어 놓으면 한동안은 의지도 되고 즐겁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작은 손짓에도 상처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 웬만큼 펀치를 날려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다. 사실 펀치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때문에 맞는 사람도 날리는 사람도 상처받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시간차이만 있을 뿐이다.
물론 좋은 의미로,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기도 한다. 무엇인가 바라지 않고 남을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는 마음에서만 그 말을 사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남으로 살면서 따뜻한 정을 나눌 수는 없을까? 우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춰 서서히 다가가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조심스레 행동한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처음 보는 이와는 큰 마찰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이 없다며 다 떠나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인연 따라 갔다가 또 인연 따라 오기 마련이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 그저 내 마음의 꽃밭을 예쁘게 잘 가꾸다 보면 나비가 꽃을 찾듯 인연은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가 아니라 내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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