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먹는다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다

슬픔과 절망을 잊으려고 먹는 것을 도피처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과식은 소화기 계통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그리하여 화를 일으킬 수 있다. 과식을 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생산된다. 이 과도한 에너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의 에너지, 욕정의 에너지, 폭력의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
많이 먹기만 할 뿐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살아가는 데는 우리가 매일 먹는 양의 절반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리어 적게 먹을 때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잘 먹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열다섯 번쯤 차근차근 씹은 뒤에 삼켜야 한다. 음식이 입안에서 액체가 될 때까지 천천히 씹어 먹으면, 창자에서 영양소가 훨씬 더 잘 흡수된다.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련이자 깊은 수행이다. 나는 음식을 한 입 한 입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먹는다. 그 음식을 자각하고, 내가 지금 음식을 먹고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수련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즐기면서 아주 신중하게 씹어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따금 쉬어가면서 같이 앉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아무 근심 걱정도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면 그 시간이 참으로 놀랍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음식 자체를 생각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먹을 때 우리는 화와 불안을 섭취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누군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면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음식이 입안에서 거의 액체가 되면 그 맛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알려면 정신을 집중해서 입의 움직임을 낱낱이 자각해야 한다. 그러면 음식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다. 버터나 잼을 바르지 않은 바싹 마른 빵에서조차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흔히 빵을 먹을 때 우유를 곁들여 마실 것이다. 나는 우유를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우유도 천천히 씹어서 먹는다. 입에 빵 한 조각을 넣고 정신을 집중해서 씹다가 우유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우유를 빵과 함께 씹는다.  그 맛이 얼마나 깊고 좋은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음식이 침과 섞여서 액체가 되면 이미 절반은 소화가 된 셈이다. 그 음식은 위와 창자에서 지극히 쉽게 소화되어 영양소 대부분이 몸에 흡수된다. 그렇게 음식을 씹을 때는 커다란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자연히 적게 먹게 된다.
손수 음식을 차려 먹을 때는 눈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눈을 믿어서는 안 된다. 과식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눈이다. 우리는 눈이 원하는 만큼 먹을 필요가 없다. 음식을 의식적으로 먹는 방법을 익히면 눈이 원하는 만큼의  절반만을 먹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호박이나 당근이나 빵이나 우유같은 간단한 음식을 그저 천천히 잘 씹어서 먹는 것이 일생 최대의 식사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다.
프랑스에 있는 우리의 플럼빌리지plumVillage 사람들은 이처럼 매우 의식적으로, 매우 천천히 음식을 씹어 먹는 수련을 오랫동안 해왔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길 바란다. 그러면 우선 몸에서 좋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따라서 마음과 의식에서도 기분 좋은 변화가 보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위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의 에너지로 눈을 길들여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 절에서 수도승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을 바리때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적당한 양을 재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그런 밥그릇을 사용하면 눈에 기만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릇을채우는 만큼이면 누구에게나 충분한 양이 된다.
 그런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음식을 사는 데 비용을 적게 쓰게 된다. 비용이 적게 들면 조금 값이 비싸더라도 유기농으로 재배된 음식을 살 여유가 생긴다. 그런 일은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기농 재배로 생계를 꾸리고자 하는 농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
화와 좌절과 절망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이 자각 훈련에 따르는 삶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실 때 의식적으로 마시면 술이 고통을 자아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을 마시면 몸과 마음에 병이 일어나고, 길에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술의 제조 자체가 고통의 씨앗을 포함하고 잇다.  술을 만드는데 곡물이 소비되는데 그만큼 세계의 식량은 부족해진다. 먹고 마시는 것을 자각하면 이같은 사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탁닛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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