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길, 많은 것 같지만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열심히 손품 발품 두뇌품 쉼없이 팔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이 보이고 강이 보이고 삼라만상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지혜가 열립니다. 이것이 확철대오 아닐까 싶습니다.
佛心이 깊어지니 그 공덕을 혼자 가져가는 것이 죄스럽게 느끼는 어느 순간에 다다랐습니다. 내 나이 비슷한 41년생∽43년생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가 머리를 때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혼자의 힘보다 함께 끌어서 미미한 수행자지만 뜻있고 참된 길을 가자고 외치고 싶었습니다.승보사찰 송광사와 법보사찰 해인사 불보종찰 통도사에서 엄청난 무언의 외침이 나를 사로 잡았습니다
30년 전 수많은 애환이 서린 을지로에서, 세상 사는  것 별것 아닌 양 유유자적 하는 유별난 뜻을 지닌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초췌한 얼굴에 어깨가 축 늘어진 사나이들과 기쁨이 반지레 흐르는 신사녀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드나드는 주막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변함없이 깊은 사랑과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일깨워주는 주모, 시원한 맥주500㏄ 아니면 소주가 우리에게서 잠자고 있는 지혜를 밝혀주었습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거듭되면서 세상사를 씹는 안주 맛으로 새 세상이 수없이 펼쳐지기도 하고 입과 입의 마찰음이 거세지면 급기야 노랫가락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을지포럼의 태동이었나 봅니다.
한편 먼저 세상에 우뚝 선 동료들은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피에 젖은 기를 일으켜 우리 모두를 등에 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면서, 아래로는 지금 이 시대의 번영을 온 누리에 깔아 놓았습니다. 시대의 변천은 항상 있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 동년배처럼 조국으로부터 8·15광복이란 천당의 기쁨과 6·.25동란이라는 지옥의 아품을 함께 배운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이것을 딛고 일어서 앞서가던 동료 여러분 어디에 계십니까! 뒤에서 늘 따라가는 우리를 위해 부푼 희망을 갖게 해주던 그날이 오늘 같은데…누군가는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심신이 쇠진해 기진맥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켜둔 등불은 세계의 어두운 곳곳을 밝히리라 확신합니다.
유별난 뜻을 지녔던 동지나, 탁월한 재능을 가진 동지나 우리 모두가 함께 살고 있었나 봅니다. 청운의 꿈을 피우지 못한 꽃이나 피운 꽃도 뿌리는 하나이었나 싶습니다. 우리들이 가졌던 젊음과 꿈은 어느새 자식들 몫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몰래 일구어 논 알찬 과일도 있고 따뜻한 마음도 있어서 여러 곳에서 환히 웃고 있습니다. 이제 훈훈한 등불을 가족은 물론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에게 켜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직도 제대로 영글지 못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매이는 동지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깊은 지식과 사랑을 베풀어 서로가 아늑한 삶을 영위합시다. ‘자식 사랑하듯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심자’고 함께 외칩시다.
일찍이 깨우친 동지, 동료, 친구 여러분. 아무리 올라가봐도 사람 사는 곳, 끝없이 내려앉아도 사람 사는 곳 인줄 알았을 때가 무엇이든지 아름다움을 장식하는 날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평생을 통하여 얻은 심오한 철학과 지혜를 안방에 매장하지 마시고 사랑과 자비가 살아 숨쉬는 곳, 을지포럼 광장으로 나와주시기 바람니다.
처음 만난 분들을 위하여 을지포럼의 특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적은 따로 거창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참석하는 동료중에서 한 분니 혼자 알고 있는 참지식을 소개할 연사로 추천되어 발표할 때 그것이 바로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맴버도 고정 된 것이 아닙니다. 사회 조직에서 입힌 옷을 벗은 동지나, 무장을 한 것이 있다면 순간만이라도 해제한 동지들을 주축으로 합니다. 이상에서 말한 세가지 특성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3無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뜻을 혜량하여 3無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힙시다.
나의 영혼이 조계사에서 받은 수계 범우(梵友, 철자를 아래로 내려 ‘버무’)빌딩이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그 이력을 변함없이 비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연 되신다면 오다가다 들려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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