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버리면 행복은 곁에

“남이야 어떻든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하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그 어느 쪽이든 행복이나 성공에서 먼 거리에 놓이게 된다.
세상은 남을 이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남을 높이고 남에게 져주는 것이 좋은 줄은 모두가 알지만,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면 자기 자신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나를 살린다고 하는 일, 그 자체가 누군가를 누르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번뇌의 현실 세계에 살되, 내심으로 그 경쟁에서 쉬면서 고요에 들어야 하고, 다시 그 고요에 있으면서도 경쟁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는 지혜를 보라’고 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적당히 타협하라는 말이 아니다. 현실은 피할 수 없다.
삶의 자체가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에 살되, 이상을 잃지 말고, 이상을 꿈꾸되, 현실에서 남을 위할 방법을 찾으라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소문을 좋아한다. 좋든, 나쁘든 간에 말하기 좋아하고 상대를 중상모략하기도 하나 효과는 지극히 적다. 어떻게 잘못 말하면 꼬리가 잡히어 도리어 말한 자신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어느 줄에 설까. 어디에 붙을까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은 끝까지 비열하다. 한 마디로 속물적 인간의 전형이다. 주위에도 그런 인물들이 조금 있다. 또한 그런 인물일수록 때론 잘 나가기도 한다.
권력 있는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해 알랑거리는 것은 권력자를 속여서라도 자신의 믿음을 얻겠다는 욕심뿐이다. 사람이 미움이나 원한을 품은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혼자 생각으로 남을 증오하고 있더라도 미워하는 자신도 같은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거짓은 그리 오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전부를 언어로 전할 수도 없을 것이며, 어떤 때는 반대의 말을 할 수도 있으며, 그때그때의 경우를 봐서 자기변명을 하려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 덜미를 잡힐 때가 있다. 당당함이 모함으로 부당함이 되는 예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말이란 자신의 주관적 개념이 넘쳐흐르긴 하나, 한편으로는 그 대상의 값어치까지 결정된다.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남을 헐뜯는 일은 그 당시에는 신랄하나 거짓말을 하고 편안해질 이유는 없다.
요즘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어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이념과 신념 없이 시대의 조류에 따라 아첨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 하나만으로는 실천이 수반되지 않을 것이며 신념 하나만으로는 광적(狂的) 행위로 추락하기 쉽다. 그러므로 큰일이나 작은 일에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물러날 때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공동체를 볼 때 남을 공격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기반을 조성하였으나, 자신의 행동에 뇌동하고 추종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기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 이념과 신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념과 신념을 행동화 시켜보자.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이념과 신념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새롭게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재산의 질량 문제가 아니다. 생각이 바뀌면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미래가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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