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겨내는 여정

인간은 갑작스럽게 삶에 내던져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뜻하는 대로 흐르는 사람은 없다. 유복한 집, 온화한 부모, 단란한 가족에 대한 선택지는 운이 좋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허상에 가까운 것이다. 적응의 동물이자 사회화에 최적화된 동물인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불완전한 환경에도 점차 익숙해진다. 어딘가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나름의 생활을 꾸려가며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안정을 찾게 되고, ‘평범함’의 범주에 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적당한 웃음과 눈물, 투정과 짜증 속에서 행복이라 인지하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마치 영화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불시에 들이닥쳤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누군가는 맞대응하여 즉각적으로 불합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이 자신과 제일 가까운 이라면 과연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존경하던 스승의 부정과 비리,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 사랑하던 애인과 이별, 가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억압, 죽음,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울수록 믿고 사랑했던 만큼,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배신감과 절망감, 상실감으로 더 짙어진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가 당신을 압도하여 슬픔과 우울, 공허가 우리의 내면을 채우고, 어쩌면 모든 잘못의 원인이 자신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며 무기력해지거나 과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이 휩쓸고 가는 이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까. 만화 ‘발화’에 나오는 주인공 인혜는 가족들과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지워버리기 위해 자비와 용서에 집착하게 되는데, 주인공과 스님의 불교적 문답을 통해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심리적 갈등과 내면의 고통을 진솔하게 풀어가고 있다. 주인공 인혜를 통해 나는 용서와 용서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마주친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 때 비로소 인간은 타인에 대한 감정적 반응도 거둘 수 있게 된다. 분노와 증오의 화살이 외부와 내부를 향하지 않고 상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은 성숙한다. 완전한 용서란 없다. 단지, 그 끝없는 지점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마음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모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그 유약함은 어쩌면 사랑하던 무언가를 지키고자 부단히 애써온 다정한 마음의 반증이 아닐까. 그 다정하고도 유약한 마음씨가 사랑스럽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모두에게 다정해 버린 나머지, 자신에게 가혹하게 대하진 않았는가? 당신은 자신 스스로를 용서하고 있는가? 모질지 못한 나머지 세상을 등지고 삶을 포기하는 순간에 이르지 않도록, 자신을 갉아먹는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어둡고 아픈 이 슬픔을 이겨내 함께 먼 길을 걸어가 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순간의 아픔을 상처로 남지 않고. 이 순간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슬픔 속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나는 이의 명복을 빌며, 용서와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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