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것은 “진실”

“사람은 신분으로 고귀하고 미천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 의해 존귀함과 미천함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진정한 기득권이나 특권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성숙에 기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시 오만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창문을 열자 새벽 별 하나가 달빛에 젖어 흐른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별을 바라보다가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공기가 상큼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가을은 풍요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고, 역설적이게도 다가올 새로운 생명의 봄을 잉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워내는 계절이다. 
떠나야 할 때를 가장 잘 알고 떠나는 사람처럼, 단풍잎은 가장 붉고 아름다운 때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아름답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수행자 같다. 찬란하고 강인한 봄의 생명력은 가을의 비워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이치는 생성되었으면 반드시 소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밝고 맑은 새로운 생명의 모습으로 재탄생 되어 만나게 될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햇덩이가 하늘을 열고 상큼한 바람이 마당을 쓸고 간다. 코를 흠흠 거리고 가을 냄새를 맡는다. 내가 밟는 지평마다 축복이고, 감사의 물결인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버려야 할 짐과 행해야 할 짐”만 잘 챙기면 될 것 같다.
작다고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디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작고 어리다고 하여 하찮게 여길 게 아니라 오히려 무겁게 여기고 두렵게 생각하고 무서워하면서 조심하고 신중히 대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대상은 새끼 사자, 독사, 불 그리고 비구라 했다. 새끼 사자는 뭇 짐승의 왕인 사자의 새끼니까, 독사는 어려도 맹독을 갖고있어 한 번 물리면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불은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소홀해서는 안 되고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비구는 어려운 인천(人天)의 스승인 부처님 제자이기에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라 한다.
무서워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게 또 있다. 이른바 사지(四知)라는 말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이 사지라는 말이다.
은밀하고 부적절하고 거래를 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돼, 나랑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누가 알겠어?”라고들 한다. 이런 제의에 거절하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네가 알고 내가 아는 것만이 아니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알잖아”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영원히 감춰질 것 같은 일도 결국은 드러나서 밝혀지기 마련이다.
요즘 오래전에 일까지 들춰내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작다고 어리다고 가벼이 여기고 하찮게 생각하고 저지른 일들이 무섭고 두렵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산다는 게 나날이 얼음장 밟듯 하는 생활이고 고추보다 맵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행동할 수도 없고 주견(主挸) 없이 남하는 그대로 덩달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산다고 해도 무서워하며 사는 거지 싶다.
가장 무섭고 두렵게 여길 것은 뭐니 뭐니해도 “진실”이란 말이다. 진실 앞에는 누구라도 이길래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벼이 여긴다든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구도 할 수 없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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