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 림 작가
시인, 작가, 한국예총 전문위원

설날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고유 명절로서, 음력으로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친지들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덕담도 나누면서 세배하고 음식도 나눠 먹는 날이다. 또한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에 나이 듦을 꺼리기도 했다.
예전에는 섣달그믐 날 자정이 지나자마자 복조리 장사꾼이 복조리를 한 짐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복조리 사라고 외쳤다. 그러면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 사서 걸어두고 복을 빌곤 하였다. 설날을 상징하는 복조리와 윷, 복주머니, 세배, 한복, 연날리기 등 설 풍속도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더군다나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친동기간 만남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설날은 ‘설다, 낯설다’의 ‘설’에서 그 유래된 ‘낯 설은 날’이라는 설도 있고, ‘서럽다’의 ‘섧다’에서 왔다고도 한다. 즉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즉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보는 거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일 때는 가족조차 인원 제한으로 만나지 못하고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야 했다. 차례를 지낸 후 한 팀이 빠져나가고 난 후에 부모님을 찾아가 세배를 드려야 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2023년도 설 명절엔 그런 불편함은 덜하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렇다면 2023년 새롭게 맞이하는 설 명절 풍속도를 풍자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궁금하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 친지들이 모이다 보면 맏며느리가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려면 힘들고 고생스럽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형제자매 손주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은 설과 추석 명절뿐이다. 막상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직계가족만이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고 싶어 하며, 번거롭게 형제들이 다 모이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인지 부모가 안 계신 후로 맏이인 형님네로 설을 쇠러 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요즘이야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으로 우리나라 어디든 당일로 오갈 수 있다지만 부모가 계시면 하루 이틀 전에 미리 가서 함께 지내고 오곤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안 계시니 빈자리가 커 보이고, 하룻밤 잠을 자고 오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설날 새벽에 일찍 출발하여 차례를 지내자마자 바로 돌아온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사촌들하고 만날 수 있는 날도 명절 때이다. 사촌들과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눠 먹고 하룻밤 함께 잠을 자면서 못 나눈 이야기도 나누고, 윷놀이하던 이야기는 옛말이다. 핵가족화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때의 온정이 아쉽다. 아이도 한둘만 낳다 보니 사촌도 몇 명 되지 않아서 친 형제자매처럼 지내려면 명절만이라도 모여서 우애를 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설날의 신풍속도는 차례를 간단히 지내고 연휴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추도 예배로 대신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가족이 모여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명절의 의미로서 큰 것이겠지만, 사촌들끼리도 점점 멀어지고 이웃사촌만 못한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아쉽다.
옛날에는 한 마을이 친지들이 모여 살면서 설날 아침에 큰집부터 차례를 지내고, 작은집으로 당숙네로 돌아가면서 차례를 지내며 덕담도 나누고 세배하였다. 어릴 때는 세배를 하고 받는 동전 때문에 설날을 무척 기다리기도 했었다. 불과 4-50여 년 전 모습이지만 요즘 MZ세대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북적거리고 소란한 모임보다는 직계가족끼리 모여서 간단히 차례를 지내거나 해외나 국내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앞으로 50년쯤 후에는 설 명절의 풍속도를 상상해보면 어떻게 변화 혹은 진화될는지? 혹시 인공로봇이 차려놓은 음식상 앞에서 차례를 지내게 예약해 놓고 가족끼리 우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유 명절의 아름다운 풍습인 설날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만나서 떡국 한 그릇 나눠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훈훈한 정서만은 그대로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