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과 함께하는 마음의 평화

 

다사다난했던 범의 해를 보내고 검은 토끼의 해가 왔다. 국가적으로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겪는 몸살이 시작되고 숨겨졌던 여러 사건 사고가 언론을 뒤덮고 삶에 지친 일반 국민들에게는 눈길조차 주기 힘든 시간 들이 이어져 왔다.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감이나 혁신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새해가 되면 늘 꿈을 꾼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 것인가. 세상은 광속으로 변화하고 있다. 행정이 그렇고, 제도가 그렇고, 생각이 그렇다. 그 외 전 분야에 변화와 혁신은 너무나 빠르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자고 일어나니 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하얀 눈 위에 동물들이 지나간 발자국만 있었다. 하얀 눈밭을 바라보니 그 안에 숨어 있을 무수한 사연들이 들리는 것 같다. 

사랑을 나누고 나서 얻은 새끼들의 귀여운 재롱과 가족을 떠올리며 힘들게 구해온 먹거리를 함께 나누던 행복한 저녁 시간 그리고 폭우를 피해 뛰어간 나무 아래서 모르는 이와 두런두런 나누었던 세상 사는 이야기, 인간들이 만들어 놓는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조를 짜서 먹이 사냥을 떠났던 기억, 겨울나기를 하려고 조금씩 모아 두었던 음식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려 난감했던 일, 부모님 잔소리를 피해 아지트에 모여 몰래 먹던 간식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개구쟁이들의 추억, 햇살 좋은 날 입에 맞는 양식을 잔뜩 구해 집으로 올 때 흥얼대던 노랫가락까지, 동물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이지 그들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깃들여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그렇다면 동물도 우리처럼 자신을 힘들게 하는 마음의 쓰레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하얀 눈이 일 년 동안 쌓인 마음의 쓰레기를 덮어서 봄이 되면 눈과 함께 녹아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세상살이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를 힘들게 해서 만든 마음의 쓰레기가 없을 수는 없겠지, 양의 차이가 있을 뿐, 눈 덮인 설원의 고요와 같은 무념무상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테니까. 

지난 일 년 동안 쌓인 마음의 쓰레기들을 들여다보면서 재활용 여부를 따져보기로 했다. 우선 재활용할 것들을 잘 말리고 펴서 사용하고 재활용이 안 되는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면 새해에는 마음의 쓰레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이도 저도 안 될 땐 하얀 눈밭에 서서 호흡하며 마음의 쓰레기를 뱉어 보는 건 어떨까? 검은 토끼가 뿌리는 하얀 눈발이 그것들을 수거해가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새하얀 백지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부터 그 백지에 새해의 희망 사항을 적어 보라고 권유하듯이. 가짓수는 중요하지 않으니 꼭 하고 싶은 것으로 채워 보라고. 이 순간에도 저 눈밭 아래서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바쁘게 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가 몽글몽글 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를 나는 ‘한 해를 지나오자 마음의 평화역에 도착했다’로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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