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미(成人之美) 정신 발휘할 때

 

“성인지미(成人之美)”란 “다른 사람을 도와 성공시킨다는 뜻의 성인지미 정신이 바로 자비정신”이다.
세상을 향해 복(福) 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산다고 해도 사람들이 없으면 빈집에 불과하지만 천막 집에 살아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으면 그 집은 희망이 있다. 우리 사회는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인간적인 삶이 박탈당한 이웃들이 넘쳐난다.
아무리 물질이 풍요해져도 도덕(道德)과 인의(人義)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사회는 머지않아 무너지게 된다.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미국에서 걸핏하면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돈을 하늘처럼 받들면서 인명은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황금의 신을 우러러 받드는 세상에서 황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탁악세(五濁惡世)”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나마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오로지 잘 살아보려고 악을 쓰듯이 외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시절 동안 큰 죄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두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른 심성을 지니도록 가르치신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의 덕분이 아닐런지(?) 
부자란 통장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넣어둔 이가 아니다. 부자는 늘 베풀 것이 있는 사람이다. 돈이 있으면서 베풀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인색한 사람이다. 또한 베풀 줄 모르는 사람도 부자가 아닌 자아도취적인 이기적 사람이다. 인색할수록 낙천적이지 못하고, 자아도취적일수록 자존감이 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눌 수 없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다. 풍요로울 때는 세상 전체를 품다가도 인색할 때는 바늘 꽂을 자리 하나 없는 마음이다. 나눔과 베풂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일도 강요하면 나쁜 일이 된다. 베풂의 생명은 자발성이다. 마음을 열어 베푸는 쪽은 베풀어 좋고 받는 쪽은 받으면서 좋은 교감이 통할 때 서로가 초라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으로 마음을 채우면 가치가 사라지고 나눔으로 마음을 비우면 아름다운 존재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을 일러 존재의 가치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한때 어려움도 뭉치면 힘을 부릴 수 있었다. 뭉쳐서 무기가 되어 나라의 법과 정책을 바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호시절은 다시 올 기미가 없다. 개인은 개인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참다운 공동체 실현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가난은 저마다 무력한 개인이 되어 모래알로 흩어져 잠적해 버렸다. 그것은 흩어져 모습을 감추었을 뿐 마음은 더욱 인색해져 간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으나 경제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인 시대, 경제라는 괴물이 사람들의 모습을 더욱 사납게 만들고 있다. 실로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이 앞선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이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은 서로 간 그물망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자들에 대한 사회의 배려와 관심이 이전과 달리 점차 희박해져 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서로 마음의 배려로 소통과 화합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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