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의 교훈

 

맷돌은 밑돌, 윗돌이 맞물려야 갈린다. 맷돌에서 밑돌, 윗돌이 제대로 맞물려 있게 하는 장치를 가리켜 ‘어처구니’라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밑돌, 윗돌이 서로 겉돌아 맷돌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겉도는 맷돌 같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회다.
눈앞의 손실과 이익에 매달리고 고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실속 없이 명예와 복수에 집착하는 게 보통이라고 사회 생물학자들이 결론 내린 지 오래다. 신중한 이성은 긴 안목으로 행위에 대한 효과와 이해를 따지라고 일러준다. 
과거는 밑돌이고 미래는 윗돌이다. 나이 든 세대가 밑돌이라면 젊은 세대는 윗돌이다. 요즘 나이 든 세대는 분한 마음에 “젊은것들 진짜 고생이 뭔지 한 번 해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러다 홀딱 망해 봐야 부모 세대 고마운 것도 알고 세상 무섭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이 든 세대들끼리 모이면 자식 세대들에게 더 이상 설음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있는 돈 움켜쥐고, 집 깔`고 앉고, 자식 위해 땅 팔지 말자고들 말한다. 
부모 세대, 곧 나이 든 세대들의 ‘서글픈 반란’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가진 것이 있는 경우의 이야기다. 가진 것조차 없으면 완전히 찬밥, 아니 쉰 죽 신세다. 집에서 키운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되기 일쑤다. 어처구니없이 들리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사회의 밑돌과 윗돌을 괴던 ‘어처구니’는 다 어디로 갔나. 이 사회의 중심을 잡아 주던 원로도 분명 그 어처구니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언젠가 출간된 이후 372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책이 있다. 도쿄(東京)대 의학부 명예 교수인 요로 다케시가 쓴 『바보의벽』이란 책이다. 인간의 뇌는 당초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인지’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안 되는 벽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것을 가리켜 요로 다케시는 ‘바보의 벽’이라 했다.
‘바보의 벽’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정말이지 서로 말이 안 통한다. 논리고 뭐고 소용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겉돌고 있는 것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이 ‘바보의 벽’ 쌓기에 분주한 가운데 결국 나라 자체가 바보가 되었나 보다. 
이런 와중에 소통도 없고, 이해하려는 것도 없고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너무 많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안정의 밑돌 없이 개혁의 윗돌만 돌려대겠다는 것이다. 나라의 맷돌이 겉돌면서 이래저래 소리 없이 국민만 힘들어하고 있다. 다시 ‘멍퇴’ 바람이 불고 범죄률과 자살률이 함께 늘고 있다. 
언제부턴가 식당가에선 매운맛이 잘 팔린다고 한다. 맛 전문가들은 불황 탓이라고 말한다. 불황일수록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맵고 자극적인 맛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온통 겉돌고 있는 이 나라 안에서 우리 국민은 매운맛으로나마 격한 스트레스를 억누르며 독해질 대로 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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