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자각

무언가를 알고 싶은 욕구는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한 인물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자 누군가 그에게 너는 너 자신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때 그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흔히 ‘무지(無知)의 지(知)’라고 알려진 이 말을  통해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야 진정으로 알고 싶다는 마음을 내고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눌스님 역시 <수심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다만 모른다는 것을 알라(但知不會)”
음미할수록 깊은맛이 우러나오는 글귀다. 그렇다면 왜 모른다는 자각이 중요할까? 반복되는 말이지만,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착각이나 혹은 자만의 감정이 튀어나온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자신의 배로 낳았으므로 자식들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자기 자식이 학교폭력을 당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자식들 역시 홀로 되신 아버지는 우리들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믿고 있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외롭고 이성 친구를 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이것 또한 상대를 안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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