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신체 장기와 같아 함부로 떼어버릴 수 없다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연히 자식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식은 곧 부모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과 의사소통의 길을 열어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심장에 이상이 생겼거나 위에 병이 났다고 해서 우리는 심장이나 위를 떼어버리지 않는다.
“넌 내 심장이 아니야. 내 심장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아! 넌 내 위가 아니야 내 위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아! 어디,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도 그렇게 말을 할 리가 없다.
자식이 잉태되는 순간에 어머니는 자신과 태아가 하나임을 안다. 그리고 아기와 대화를 시작한다. “아가야, 네가 우리에게 왔구나. 너의 작은 몸이 느껴지는구나.” 어머니는 몸속의 자식에게 사랑의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음식을 가려서 먹는다. 어머니가 먹고 마시는 것을 자식도 먹고 마시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불안하면 자식의 마음도 불안하고, 어머니가 기쁘면 자식도 기쁘다. 어머니와 자식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탯줄이 끊기면, 그 일체감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자식이 열두어 살이 되면 자식이 곧 나라는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다. 자식이 나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식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나의 심장과 위장에 병이 든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식을 타인이라고, 나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믿고 험한 말을 하게 된다. “저리 가!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내 아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아. 넌 내 딸이 아니야! 내 딸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아.”
그러나 병든 심장이나 위장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도 아들이나 딸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부처는 “저 혼자 존재하는 생명은 없다”고 말했다. 부모와 자식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무수한 세대 중 일부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길고 긴 흐름의 한 지점에서 서 있을 뿐이다. 자식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식의 행동은 부모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부모의 행동 또한 자식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행복이 자식의 행복이고, 자식의 고통이 부모의 고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백 퍼센트를 던져서 부모와 자식 간 의사소통의 길을 환히 열어두어야 한다.
혼란과 무지 탓에 부모는 자기들만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들과 딸은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모가 고통을 당할 때는 자식도 고통을 당한다. 아들과 딸의 모든 세포 속에는 부모가 있다. 자식의 마음속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식이 하나라는 처음의 그 깨달음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과오를 범해왔다. 가령, 우리는 그릇된 식생활과 온갖 근심 걱정으로 위와 장과 심장에 병을 일으켰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탓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식의 문제는 바로 부모의 문제가 된다. 부모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얘야, 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오랫동안 네가 어떤 고통을 받아왔는지 다 알아. 네가 고통스러우면 나도 고통스럽다. 자식이 고통을 당하는데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같이 노력해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없을까? 대화를 할 수 없을까? 난 진심으로 너하고 이야길 나누고 싶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네가 나를 좀 도와주렴.”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이해의 깨달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은 하나이며, 행복과 평화는 어느 한쪽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사랑과 이해에서, 서로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이해하는 데서 나온 말이어야 한다. 부모는 자신과 자식의 진정한 본성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의지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부모가 곧 자식이고 자식이 곧 부모다. 그들은 서로에게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매순간을 자각하면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자. 대화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술을 익혀야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네가 곧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넌 나의 연속이고, 네가 고통을 당하면 나는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우린 힘을 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해. 제발 날 도와줘.” 그러면 아들도 똑같은 심정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고통을 당하는 한은 자기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자기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것이고, 그리하여 아버지와 대화의 길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들이 먼저 아버지를 대화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둘이서 하나로 살기로 다짐한 사이다. 행복도 고통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진심으로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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