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욕망”이 인간을 망친다

현대인은 스스로 공간에서 삶의 쉼표를 요
구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타성에 젖은 가치관을 전환하기 위한 일탈의 기회를 이제는 가져봄이 어떨지?
산사에서 새벽의 청아한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많다.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새벽의 기운을 만나면 더욱 활기찰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새벽별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를 자문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새벽을 맞이한다는 것은 아주 각별한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새벽은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이며 기(氣)가 정화되는 시간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생의 행로에서 새벽 정신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정화하고 묵은 타성의 늪에서 거듭 깨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기와 아집의 벽은 더욱 높아지고 대립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거기에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끝없는 욕망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지도 모른다.
바다에 빠진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욕망의 충족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무한히 쫓기보다 차라리 욕망을 줄이고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것이다.
그래서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깨어 있는 휴식”이 필요하다. 진정한 휴식은 육체나 정신을 한가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 있는 성찰인 것이다.
즉, 자신을 향한 친절한 반성이며 아름다운 점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로움이 생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떤 테두리에서보다 제도 밖에서 나의 주장을 토해내기 전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고집과 자만을 버리고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본다면 생각의 차이쯤은 충분히 좁혀 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독불장군이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만물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도리를 제도로 알면 누구나 사람과 우주 만물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존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얼마 전부터 소위 “갑질”을 해대는 사건 사고가 터지고 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앞뒤 분간도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모두는 끝과 시작의 한계는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끝과 시작의 끝을 알면 누군들 이렇게 살 것인가. 욕망과 집착을 버리면 우리의 삶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안다. 고요한 정신으로 집중한다는 것 자체부터 우리는 생각하자.
이제라도 서로 격려하고 존중하며 화합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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