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숙 진 작가

·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문인협회·중앙대문인회 회원
·실버넷뉴스 기자 역임
·글마루 회장 역임.
·동작문인협회 자문위원
·《일요주간》 칼럼 필진
·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2020) 수필집
·『가난한 날의 초상(肖像』(2009)
·『해바라기의 꿈』(2019)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넓어진다


바위도 오래되면 이끼가 끼고 수많은 잡풀의 씨앗들이 날아와 뿌리를 내린다. 씨앗을 쪼는 참새도 쉬어가고 열매를 갈무리하는 다람쥐도 찾아온다. 그믐달도 삐뚜름해지다 일출 뒤에 숨어 바위에 내려앉는다. 이 하찮은 돌덩어리도 늙으면 품이 넓어져 모든 삼라만상을 받아들인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 세상에서야 말해 무엇 할까.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란 말이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체력은 저하되지만, 오랜 경륜으로 인해 판단력이 우수하고 소중한 삶의 지혜가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며늘아기가 해외 출장을 간 어느 휴일이다, 혼자만 하는 육아가 자신 없는 아들이 생후 육 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본가에 왔다. 신이 나서 냉동고를 열어젖히는 찰나 어린 것이 갑자기 집이 떠나갈 듯이 울어 젖힌다. 기저귀 갈아주다가 당황해서 쩔쩔매는 꼴이라니. 슬며시 웃으며 베이비파우더 싹 쳐주니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까르르 웃는다. 뭘 어떻게 했느냐는 눈 질문과 함께 쌍 엄지를 치켜든다. 명색이 박사라지만, 초보 아빠 딱지 떼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울음소리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아는 이 어미의 경험치를 따라오진 못한다. 
그리스에는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라.’라는 격언이 있다. 수명이 짧을 때는 노인의 활용이 높아서 한집에 살기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짐이 된다. 반려견이 자기 어머니보다 서열이 앞서는 세상이다. 어떤 노인인들 푸르른 모퉁이를 돌아 나오지 않은 이가 있을까만, 주름지고 머리가 하얗다고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쌓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잘 전수하는 어른이어야 한다.
  둘째 손녀가 태어나서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할 때다. 처음에는  “아기 우유 좀 줘도 되겠니?”하고 큰 아기에게 물어보고 새아기를 안으라고 당부했다. “에이, 뭘 그렇게 까지나요?” 하더니, 그래도 어미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할미가 아기 보러 갔을 때도 언니부터 찾아서 안아주고 너 동생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내 손을 잡고 아기그네에 턱 얹어준다. 혼자 독차지하던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상처에 연고를 잘 발라준 덕으로 동생을 시샘한 적 없이 잘 데리고 놀아주었다. 모두 경험에 의한 지혜의 덕이다. 인생 최초의 경쟁자는 형제자매라고 하지 않던가. 정신적인 주춧돌을 튼실하게 하려면,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오늘의 70대는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장수 시대 노년의 변화된 삶이다. 비록 시곗바늘이 하오의 시간을 바장이고 있지만, 앞으로 30년은 거뜬하다. 일자리가 없다면, 봉사 활동으로 생산적 존재임을 사회에 심어줘야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와 화합으로 풀어낼 기회다. 봉사는 사회의 에너지이고 능력이다. 노년의 봉사는 이웃에게는 선한 영향력의 본이 된다. 특히 아기들 교육에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
  한번은 엄마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를 받은 세 살짜리가 “엄마 자시는데요.” 했다. 송화자가 벌써 존댓말을 쓰니 대견스럽다고 하면 좋았을 텐데, 몇 번이나 애 말을 들먹이며 큰소리로 깔깔 웃어댔다. 아이가 무안해서 다음부터 전화 받기를 주저한다. 어휘 구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시기라서 다독이며 신경 썼던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는 칭찬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아이의 반듯한 인성을 위해 노심초사한 것을 다 늘어놓기는 지면이 부족하지만,  주위 환경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는 이웃의 협조와 배려가 꼭 필요하다.
도서관을 새로 짓고, 남의 노인을 빌리지는 않더라도 노인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니 어르신들이 앞장설 일이다.
돌도 오래되어야 품 안이 너른 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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