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거기서 거긴데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남을 헌신하며 살아왔는가?
얼기설기 어우러져 세상은 한결같이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며 방황하고, 때론 일탈하는 삶 속에서 희망의 빙점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각박한 도심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따뜻한 배려 속에 우리 지역에서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길 희망해 본다.
태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지나간 뒤에는 고요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흉허물없는 사람 누가 있으며,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 고,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말고, 세상살이 모두 거기서 거긴데 명예 얻었다고 목에 힘주지 말자.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만남의 기쁨, 헤어짐의 서러움이 거기서 거긴데, 아무리 지독한 인연이라도 끝남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괴로움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모든 갈등은 인간과의 사이에 쌓이게 마련이다 집에 기르는 애완동물도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이 애완동물을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관계를 바로 보는 것이 우선이다.
친구의 승진을 위해 경쟁자를 만들고, 협력해야 할 동료를 이익을 남겨야 하는 영업자로 만들고, 자식에겐 내가 못 이룬 욕망을 채울 대리자로 만든 것이 모두 나 자신이다.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화를 내고 상대방을 멀리하며, 나의 몸과 마음을 지치고 병들게 만든다.
따라서 지금 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사람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경쟁이 아닌 나에게 이익을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여기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나를 일깨워주는 스승으로 돌려 생각한다면 화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눈앞의 시간을 넘어 조금 길게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너와 나의 대립과 구분을 넘어 하나 될 수 있는 세상, 포용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마음 “포용과 관용”, “나누고 베풀고자”하는 생각이 있으면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작은 일에서부터 마음을 쓸 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배려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순간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또한 문제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는 말은 불교에선 “연기세계”와 같다고 한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주위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슬프고 기쁜 일은 함께 나누며 동행(同行)할 수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뜨릴 때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처럼 모두가 아닌 서로 의지하고 믿고 소통하며 화합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제 모두 초심(初心)을 잊지 말고 충실할 때 자신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먼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길 때 더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빨리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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