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

 

이 숙 진 작가
·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문인협회·중앙대문인회 회원
·동작문인협회 자문위원


집 앞을 나서면 곧게 뻗은 소나무가 하늘 허리에서 기웃거린다. 철쭉 군락을 맴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공작단풍이 버들처럼 휘늘어져 운치를 자아낸다. 바람은 비둘기 꽁지에 햇살을 내려놓고 졸고 있다. 이렇게 어우러진 숲에도 직선과 곡선이 나름의 농도로 초록을 채색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얽히고설켜 더불어 사는 거다.  
지난달 논단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이슈는 교권 붕괴다. 공교육 붕괴의 폐단 중 하나는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가정에서 불면 날아갈세라 과잉보호 받던 아이가 단체 생활에서도 특별대우를 원하니 적응하기가 힘들다. 
학부모 갑질은 1970년대에도 성행했다. 필자의 남편이 여학교에 재직할 때의 이야기다. 중3 여학생들의 총각 선생에 대한 스토킹이 지금 연예인이 당하는 수준이다. 아비의 권세를 이용한 장미의 가시에 찔려 유치장까지 갔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공분실 직원인 아비에게 “우리 선생님 이상하다”는 황당한 응석. 아빠가  혼내준다며 조사도 하지 않고 당장 잡아들이라는 ‘묻지 마’ 갑질. 유치장 접수부를 열람하니 ‘반공법 위반’이다. 맙소사! 교사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개탄스러운 가운데 담당 형사를 만났다.
“이런 건전한 젊은이를 매장한다면, 이 사회는 망해야 합니다. 가택 수색에서 선생님의 비망록과 사법시험 준비를  하는 인생 설계도를 다 읽어 봤습니다.” 가끔 어린 학생의 철없는 장난에 선생님들이 고생하신다며 죄송하다고 그 아비 대신 사과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라는 말은 고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겠다. 그 아비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에게 스승이 없기를 바라십니까?”
필자의 친구가 초등학교 재직할 때의 일이다. 1학년 담임을 맡아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계속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 매일 화장실에서 풀린 운동화 끈을 소변에 적셔 와서 묶어달라고 발을 내미는 아이. 등등. 또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본인이 늘 목이 쉬었다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배식 지도로 밥을 빨리 먹어야 해서 소화불량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고 말았다. 아마 소변 묻은 끈을 묶어주며 얼굴을 찌푸렸다면, 그 담임 파면시키라고 밥그릇을 들먹였겠지.
왕의 DNA 양육법으로 자폐 치료한다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 논란도 의학적 근거가 없지만, 그런 아이를 가진 부모의 아픈 마음은 가슴 시리다. 하지만, 예의범절보다 경제성과 효과성이 더 치중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영재 서울과학고를 자퇴한다는 천재 소년의 애끊는 부모 마음도 안타깝다. 그러나 학교 현장이 또래 집단과 교류와 소통을 하기 위한 정서적 신체적 성숙이 필요한 곳이다.  특히 영재 학교는 팀 과제가 많아 이런 능력을 요구한다. 17년을 우등만 하던 영재 형들의 상대평가라는 현실에 대한 상실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 천재 아이에게 적합한 시스템이 없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지, 누구에게도 서운할 일은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까.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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