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기의 힘

할머니는 자주 누워있는 손녀를 면박주지 않고 누그러진 음성으로 ‘누워 배긴다’는 표현을 썼다. 물론 그 말속에는 어린 손녀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꾸중이 있었을 테지만 오히려 그 표현이 손녀에게만 있는 특별한 무언가로 여겨졌다.
그 덕분에 손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누워 배기는 생활을 즐긴다. 소녀에게 ‘눕는 일’은 그의 안에 들어온 미움을 내보내는 일이기도 하고, 깊은 이해를 꺼내는 일이기도 하다.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고, 미안한 마음을 떠올리기도 하며, 어떤 것을 용서하고 어떤 것은 반성한다. 
나를 찾는 시간이 되기도 하며 멀리 간 시(詩)를 곁에 끌어다 놓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덜 화를 내고 덜 오해하게 된 것은 나이가 들어 노련함이 생긴 탓이 아니라 순전히 ‘눕는 일’ 때문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그를 부른 또 다른 이름은 ‘무던이’였다. ‘무던이’는 성질이 너그럽고 수더분한 사람을 이른다. 
얼마 전 손녀는 베른트 브루너의 〈눕기의 기술〉을 책상위에 올려다 놓고, 오고 가며 ‘눕기’를 화두 삼아 지냈다. ‘누워 했던 일’에 대해, ‘누워 할 일’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능동적인 눕기가 주는 이로움을 확신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책에서 건져 담았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큰 효율을 내는 수평적 자세, 눕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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