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지쳐 단풍이 드는데

땅거미가 지는 거리를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다. 길을 가는 사람은 모두 그 노랑에 눈을 떼지 못했다. 떨어진 나뭇잎을 며칠이라도 더 보고 싶은데 도심 거리에 떨어진 은행잎은 단풍 낙엽 거리로 지정된 곳이 아니면 하루도 그곳에 머물지 못한다. 
다음날 보면 거리는 아무일 없다는 듯 깨끗하다. 
 깊은 가을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단풍은 색깔이 가지가지다. 새빨갛게 불타는 듯한 잎, 나무를 샛노랗게 뒤덮은 잎, 한 나무에서도 초록, 노르스름한 노랑 불그스름 빨강으로 그라데이션 된 잎 등, 각양각색으로 가을을 꽃피우고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단풍 색깔이 있을 것이다.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보다 은근한 맛이 나는 파스텔 단풍이 점점 좋아진다.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발그레 노르스름한 잎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좀 어설프고 헐렁하게 물든 잎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강렬한 단풍보다 시선을 덜 받겠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워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나뭇잎도 날씨가 도와준다면 더 진하게 물들겠지, 하지만 단풍이 절정일 무렵이면 꼭 비바람이 불어 하룻밤 사이에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만다. 
그럴지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조금 서툴고 부족해도 기죽거나 불평하거나 포기하는 나무가 하나도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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