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의 미학

 

인간은 걸을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두 발로 걷는다. 다원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부터 나왔다. 원숭이의 한 종(種)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걷기에 성공하면서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은 걷게 되면서 멀리 보며, 남은 두 팔로 도구를 만들어 초원의 환경에 적응한다. 날 수도 없고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는 왜소한 인간이 살아남은 이유는 두 발로 걷는 능력 때문이다. 
아직도 걷기에 실패한 원숭이무리의 생활을 보면, 두 발로 걷는 행위가 얼마나 혁명적인 진화의 몸짓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인간은 뇌를 발달시킨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시기도 갓 걸음마를 뗄 때부터다. 인간이 호모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앤스로 진화한 것은 오로지 두 다리 덕택이다. 직립보행이 지혜로 이어진 것이다. 
 고대의 야생에서 인간은 계속 걸을 수밖에 없다. 걷지 못하면 움직이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으면 죽기 때문이다. 걷기는 어찌보면 인간의 여러 동작 중에서 가장 단순하다. 두 발로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원시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은 생각을 하며 지능을 키운다. 걷는 행위가 인간의 존재성과 사유능력을 나타내는 기준이 된 셈이다.
 두 다리로 걷는 보행이 사유를 만나는 공간에는 철학자가 있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그룹을 소요학파(逍遙學派), 즉 걸으면서 지혜를 나누는 철학자들이라 한다. 사유하기 위해 걸었다는 서양철학자들의 계보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루소, 칸트, 니체, 후서 등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고에는 두 발이 중심이 된다. 
 특히 루소는 걷는데 목숨을 걸었다. 보행을 사색의 방식으로 삼은 루소가 숲길을 걸으며 사유한 화두는 인간의 본성이다. 오염되지 않는 자연 상태와 같은 인간의 선천적 순수성을 주장한 루소의 사상이 걷기에서 완성된다.
 걸음의 미학은 문학에서도 서술된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는 평생 걸었다. 그는 두 다리를 문학의 도구로 삼았다. 산과 숲 깊숙이 걸어 들어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신성한 속성을 자연 생명체를 통해 발현하는 문학의 계보가 워즈워스로부터 시작된다. 워즈워스의 문학적 핏줄을 이어받은 미국의 초월주의 작가들도 열심히 걸었다. 핸리 데이비드소로는 자연으로 걸어가는 행위를 자유를 찾는 과정이라 적고 있다. 이처럼 문학가들에게 보행의 의미는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는 미학적 몸부림이다.
 걷기는 종교의 영역에서 순례라는 이름으로 승화된다. 순례는 고행의 걸음이다. 순례는 또 마음의 수행이다. 순례자는 길을 걸으며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평온을 동시에 느낀다. 정신과 육체의 변증법적 조화가 순례의 의미인 것이다. 더욱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참된 자신을 찾는데 머물지 않고 세계평화를 향해 뻗어갈 때, 그 걷기는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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