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관 네 명이 흑인 운전자를 심하게 구타한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의 언론이 그 사건을 보도했고, 모두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려고 했다. 피해자를 편드는 언론도 있었고 경찰을 두둔하는 언론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판단을 내려서 어느 쪽을 편드는 것은 그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행동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 구타 사건의 피해자이고, 다른 한편으로 구타를 한 경찰편이기도 하다. 분노와 두려움과 좌절과 폭력이 구타당한 사람이나 구타한 사람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양자가 모두 들어 있다.
경찰관을 이해하고 그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가 그들의 남편이나 아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고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는 배우자가 분노와 공포와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질 것이다. 경찰관인 아내나 남편이 고통을 덜 받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사는 도시에 이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지와 통찰과 연민을 가지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희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라고 예수는 기도했다. 어떤 사람이 범행을 저질러서 타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는데 그들은 자신의 범행이 타인에게 얼마만큼 고통을 주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폭행을 할 때마다 그들은 타인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는 셈이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해서 분노를 발산해 버리면 고통이 줄어든다고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커질 따름이다.
적에게 폭탄을 떨어뜨릴 때 우리는 자신에게도 폭탄을 떨어뜨리는 셈이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인들도 베트남인들만큼이나 고통을 당했다. 전쟁의 상처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깊게 남았다. 그러므로 폭력을 중단하는 것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에게 행하는 것임을 통찰하지 못하면 우리는 폭력을 멈출 수 없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타인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곧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교사들 자신이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지 못하면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독선적인 태도로는 우리가 통찰한 것을 타인들에게 일깨워줄 수가 없다. 우리는 유연하고도 이지적인 태도와 재치있는 수단으로, 우리가 통찰한 것을 타인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전쟁이 터진 다음에나 그것을 끝내기 위해 노력 한다. 전쟁의 씨앗이 이미 도처에 있었으며,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속에도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대체로 알지 못한다. 전쟁이 터져서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전쟁에 대해 얘기를 할때에야 비로소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무엇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단지 어느 쪽이 한쪽을 두둔하고 다른 쪽을 비난할 뿐, 그 전쟁으로 인한 과거를 종식시키는 데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참다운 수련자로서 우리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사태를 주시해야 하고, 전쟁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통찰과 깨달음을 갖고 있으면, 타인들도 똑같은 것을 통찰하고 깨닫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서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극한 사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나토 국가들은 베오그라드에 대한 폭격이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분쟁을 종식시킬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일어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뻐한 사실이었는데도, 그들은 그 씨앗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사전에 막을 수가 없었다. 폭력은 결코 평화와 이해를 가져올 수 없다. 깊은 성찰을 통해 폭력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할 때만 우리는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훌륭한 명상가라면 타인들보다 더 깊은 통찰에 이를 것이고, 그리하여 폭격과 같은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서도 인종 분쟁을 제지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는 곧 전쟁이 터지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전쟁으로 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코소보에서와 같은 폭력적 가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정치가들에게 전해서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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