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눔의 삶

 

가난은 더 이상 성스러운 미덕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행복을 누리는 문제가 일치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돈만 벌다 갈 것인가. 좋은 직장을 잡고, 내 이름의 집하나 장만하고, 멋진 차 하나 사기 위해서만 살 것인가? 꿈이라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너무도 조급히 뛰어간다.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이 말이다.
갈수록 살기 어렵다는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 갑갑한 현실에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욕심이 좌절을 부르고 절망은 더 깊은 절망으로 돌아온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경제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경제라는 “괴물”이 사람들의 인심을 더욱 사납게 만들고 있다. 종교적 구원조차도 황금만능주의 지배를 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이런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한 이웃을 돌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은 서로 간 그물망의 인연으로 맺어져 있게 마련이다. 이제 가난은 우리시대 가장 구박받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다.
약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와 관심이 이전과 달리 점차 희박해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이 무능을 넘어 악으로 규정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가난의 주체가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를 넘어 폄하와 멸시와 소외와 구박과 억압과 폭력을 강제 당하고 있다면 그 심정은 어찌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있겠는가.
한 때 가난도 뭉치면 힘을 부릴 수 있었다. 뭉쳐서 무기가 되고 절망이기도 했다. 나아가 나라의 법과 정책을 바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좋은 호시절은 다시 올 기미가 없다.
개인은 개인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이기주위에 함몰되어 참다운 공동체 실현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는 말은 불교에선 “연기의 세계”라 부른다. 무수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웃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슬프고 기쁜 일은 함께 나누어 동행할 수 있는 의식을 종교의 장벽을 넘어 인류애의 작은 실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부 문화는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을 주고 그 과보를 받는다는 점에서 결국 “내가 내 자신에게 베푸는 것”이다.
눈앞의 시간을 넘어 조금 길게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너와 나의 대립과 구분을 넘어 하나 될 수 있는 세상, 포용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가고자하는 마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된다.
인간에 대한 긍정과 믿음, 그리고 신뢰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팍팍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만의 수호천사를 꿈꿀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 능력 안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갖지 못한 그 누구에게 천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인생에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기빙문화(giving culture)로 불리는 보시 문화가 생활 수준이 향상되자 전국민적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인생은 결코 돈으로만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돈은 단지 우리 인생의 한 도구일 뿐이다. 월급에서 1%를 떼어 좋은 일에 쓰자고 할 때 그 1%는 너무나도 크지만 나머지 99%의 월급은 언제나 쥣꼬리처럼 느껴지는 이치를 생각할 때, 참으로 소중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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