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뒤의 기쁨,
잊어버린 세상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만남의 방식도 달라졌다. 만남의 방식이 달라진건 의사소통 기술들이 놀랍게 발달한 결과일 것이다. 난로나 아랫목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밀착해서 둘러앉을 이유가 없어졌고 휴대전화 안 가진 사람 없으니 굳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을 필요도 없어졌다. 공간 전체가 따뜻해지는 난방 방식, 흔해빠진 휴대전화가 우리에게 반드시 득일까. 우선 나부터 따뜻함에 중독돼 눈 오는 거리를 전처럼 헤멜 수가 없어졌다. 콧등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소스라치는 환희인 건 추위를 느끼기 전까일 뿐이다. 추운데 무슨 청승이랴 싶어 남들처럼 히터 빵빵한 차 안으로 얼른 도망친다. ‘창밖을 봐, 첫눈이 와’는 해마다 계절의 끝에 준비된 놀랍고 싱그러운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 말을 듣고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을 사람에겐 맥 빠진 비명에 불과하다. 추위에 대한 내성이 없어졌다. 그러니 오래 눈을 맞기는 글렀다. 눈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른 고통에 대한 내성은 있는가? 아니다 아픔을 견디는 힘이 골고루 없어졌다. 눈 맞기만 글러버린 게 아니라 이래서는 참고 견뎌야 얻을 수 있는 종류의기쁨을 모조리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이 너무 쉽다. 아무것도 아프지 않다. 그 무섭던 치과 치료까지 아프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거야 물론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통증을 참을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든 세상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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