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이 늘어난 세상 풍경

 

인생이 길어졌다. 지금 태어나는 여자아이는 두 명 중 한 명은 백세를 누린다. 2050년이 되면 지구촌에 어린아이보다 노인이 두 배 많을 것이다. 이리하여 학업, 직업,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인생은 빈둥대거나 방황하더라도 다시 걸어가도 되는 머나먼 여정이다. 최근 4년 평균 sky 대학교의 합격자가 재수 이상 N 수생이 61. 2%라고 한다. N수 신입생 비중이 역대 최고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최후 시한을 지킬 필요 없이 이리저리 돌아갈 여지가 있다. 65세 은퇴하면, 30년을 더 살아야 하므로 전공 선택이 달라졌다. 정년을 피할 수 있는 과, 즉 의예과나 약학과 같은 과를 선호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성적이 못 미치면, 지방으로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수능 1등급 학생 가운데 96. 5%가 ‘미적분’ ‘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다.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정보통신기술이나 자격증 하나쯤은 덤으로 있어야 불안하지 않다. 학업을 빨리 마치려고 애쓰지 않는다. 직업을 여러 개 가지려고 너도나도 복수전공에 열을 올리니, 입학에 이어 졸업 유예도 보편화됐다. MZ 세대에게는 결혼도 필수가 아니다. 굳이 20대에 결혼해서 애를 낳을 필요도 없다. 오래 살다 보니 재혼이나 이혼이 늘어난다. 남성은 75세까지도 생식능력이 있으므로 손자 볼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형제간에도 맏이와 막내의 나이 차가 크고, 고모 삼촌이 더 어릴 수도 있어서 족보가 꼬이고 뒤엉킨다. 그러다 보니 나이 많은 세대와 가장 어린 세대 사이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의 문제가 불거진다. 지금도 젊은이들이 쓰는 은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다.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얼죽아(얼어 죽어도 찬 음료)’ ‘킹 받네(아주 화나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어쩔티비(어쩔 텐데)’ 등 비속어를 겸한 신조어는 세대 간에 통역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기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세계 경제 10대 강국으로 만든 노년층과, 스마트 폰, 태블릿 PC를 끼고 첨단 기술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서로 다른 기억과 기준을 간직한 채 동시에 살아가니 자연적으로 경제관념이 다르다. 조부모와 증조부모까지 계신 어느 집에서 세뱃돈을 학생은 배춧잎 색깔, 아기는 천 원짜리를 줬더니 아기가 발버둥 치고 울어서 난감했다는 일화가 있다. 증조부모께서 증손자까지 챙길 세뱃돈이 만만치 않으리라. 어르신 세대는 몸이 가난을 기억하여 소비에 엄격하다 보니, 꼰대 취급을 받는다. 특히 이런 댁에서는 중간 세대가 세찬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 장수 시대에 즈음하여 노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낀 세대’는 노후 준비가 부실하다. 만혼, 비혼, 늦깎이 취업으로 양육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인생 시계를 늦추는 건 세계적인 추세니 어쩌겠는가.

평균 수명이 늘어난 이 시점의 낀 세대에게는 각각 적절한 수준의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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