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홍시, 11월의 홍시 그리고 아버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맘 때가 되면 서리를 맞아 더없이 시원하고 깔끔한 단맛의 물감 홍시가 생각이 난다. 잘 익은 낭창한 홍시의 꼭지를 따내고 그곳에 입을 댄 후 쭈욱 빨아들여 한입 채워 먹는 맛은 환상이었다. 감씨에 붙어 따라오는 부드러운 감육을 능수능란한 혀와 앞니의 조화로운 협업으로 벗겨 내 씹는 듯 마는 듯 삼켜내면 남모르는 성취감도 쏠쏠했다.
나는 유난히도 감을 좋아했다. 단감은 단감대로 좋아했고, 물감과 대봉감 홍시, 그리고 떨어진 감을 썰어서 말린 ‘빼깽이’라고 하는 것도 잘 먹었다.
그리고 감을 깍아서 말려야 하는데 그 껍질도 하얗게 분이 나면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감이 비타민A와 C가 풍부하고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해주며 소화기능도 돕는다고 하니 건강 유지에 매우 요긴한 과일이었다. 겨울철 감기로부터 날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도 한 것이다.
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다. 단감이 익었는지 보기 위해 앞니로 살짝 긁어서 맛을 보기도 하고, 태풍이 불어 덜 익은 감이 떨어지면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절구통에 소금물을 붓고 우려서 먹기도 했다. 아무 맛이 없었다.
그리고 제 때보다 먼저 홍시가 되어 우리를 유혹한 것은 거의 상처가 나 있거나 벌레 먹은 것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봄부터 늦가을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 기다림 때문에 ‘꿀맛’이 된 것 같다.
대봉감은 홍시가 되기 전에 따서 병아리 집(어리)을 뒤집어 밑 바닥에 볏짚을 깔아 그 위에 감을 채워 넣고 덮개로 덮은 후 키 작은 감나무 위에 얹어 놓았다. 눈이 내린 한 겨울 이른 저녁을 먹고 뭔가 허전함이 느껴질 때 그 홍시를 꺼내 먹었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이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도시로 떠나보낸 자식들과의 추억이 생각나셨는지 가족 채팅 방에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가지와 잘 익은 홍시사진을 찍어 올리셨다.
입맛을 다시고 있을 우리에게 “눈으로 먹는 것도 먹는 것이니라”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철학자의 말씀 같았고, 아버지의 사랑이 내 가슴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홍시와 관련된 재밌는 설화도 있다. 경북 예천에 가면 조선후기 때 효자 도시복을 기리는 효공원이 있다고 한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가 감꽃이 피어나는 5월인데 “홍시를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였다. 청년은 홍시를 구하러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고 어느 산 아래에서 애타게 기도를 했다. “홍시 한 개만 구하게 해주세요.” 기도하다 지친 청년을 호랑이가 나타나 제사가 있는 강릉의 어느 곳으로 데리고 갔다. 제사상에 놓인 홍시를 보고 기쁜 나머지 그 집 주인에게 홍시를 찾아 나선 사연을 이야기 했다.
주인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홍시를 좋아하셔서 가을이면 5섯 접을 보관해 왔고 보통 3~4개 정도만 괜찮았는데, 올해에는 다른 해보다 좀 더 많이 성했다고 하며 홍시를 싸 주었다. 그길로 홍시를 가지고 돌아와 병드신 어머니께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제사상에 홍시를 올리기 위해 가을부터 봄까지 감을 보관해온 자식이나, 병든 어머니의 소원을 위해 5월의 홍시를 찾아 나선 아들 모두 참으로 지극정성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효심은 가족 간의 정이 사라지고 존속간의 범죄도 늘어가는 요즘 생각할수록 의미가 있다.
가수 나훈아 선생님은 ‘홍시’에서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노래했다.
그의 또 다른 노래 ‘고향 역’을 듣고 있으면 내 고향의 구례구역도 생간난다. 나무 꼭대기에 남겨진 ‘까치밥’ 홍시들이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있는 시골의 가을과 자식들을 그리워할 부모님이 더욱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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