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와 주저하는 나

나는 대체로 무슨 일이건 자신감보다 주저(躊躇)가 빨랐다. 가만 돌이켜보니 괜찮은 스펙을 쌓아놓고도 그것이 내게 상당한 무기라는 사실을 몰랐다.
좋게 말하면 겸손이지만 실은 손에 든 떡이 제 것인 줄 몰랐다는 무지와 무감이었다. 기적이라는 일이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잽싸게 자세를 바꿔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그 여학생”이라는 시를 쓴 때, 아픈 이를 참다 찾아간 치과에서 나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나의이는 수명을 다해가고, 남은 것은 통증밖에 없는데 가까운 동네에 개업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으나, “정말 썩은 이만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이의 통증을 넘어서는 수치스런 고통이다.
그러나 치통이 극에 달해 본 사람은 알리라. 육신의 통증이 정신의 고통을 끝내 이기고야 만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환자로 나를 대하며, 수석졸업의 솜씨를 깔끔히 내 사랑니를 뽑을 따름이다. 썩은 이를 보이기가 수치스러운 고통이라고 생각한 것은 온전히 나의 착가이었다.
짝사랑도 아니고 주저하는 사랑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지막 사랑니를 뽑고 나면 이제 그마저 끝이다. 병원을 나선 길거리에 여름이 깊게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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